2015년 8월 21일 금요일

생명과의 진리를 가지고 오신 그리스도 안상홍님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구원자 입니다. 인류는 왜 구원자가 필요한지 또 인류에게 닥친 위기는 무엇이기에 구원자가 등장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기다리는 이 시대의 구원자는 과연 누구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0:10)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바로 인류에게 생명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지구상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명이 있고 굳이 예수님이 아니더라도 생명을 가지고 태어납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오셨다고 하니 예수님께서 주려고 하는 ‘생명’은 무엇이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한복음 6:63)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육신의 생명을 더해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처럼 무익한 육신의 목숨이 아닌 영원히 사는 영혼의 생명, 즉 ‘영생’을 주고 싶어 하신 것입니다. 유한한 삶을 생명의 전부로 여기고 살아가는 인류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죠.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인류는 왜 영생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 해답은 창조의 역사가 수록된 창세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6~17)

하나님께서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그곳에 살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며 자유를 만끽하도록 하셨지만 단 하나, 바로 선악과만큼은 먹지 말라는 금령을 내렸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엄히 명하셨지만 아담과 하와는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뱀의 꼬임으로 선악과를 먹고 맙니다. 하나님의 금령을 어긴 결과는 인류의 죽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어도 다시 살 수 있는 길은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세기 3:22)

그 방법은 바로 생명과 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라 할지라도 생명과를 먹는다면 영생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세기 3:24)

그룹천사들과 화염검은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가 생명과에 손을 댈 수 없도록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켰기에 결국 생명과의 길은 막혔고 인류는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 이후 지금까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의 굴레에서 인류를 구원하고자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손댈 수 없었던 그 생명과를 가지고 말이죠...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6:53)

그런데 인류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오신 예수님께서 에덴동산의 생명과라며 주신 것이 당신의 살과 피였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살과 피는 에덴동산의 생명과라는 뜻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태복음 13:34~35)

창세의 역사 속에 감추어진 것은 무엇일까요? 그룹들과 화염검으로 감추어버린 것. 바로 생명과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비유’라고 하시며 실체는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라면 꼭 당신의 살과 피를 먹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살과 피는 어떻게 먹고 마실 수 있을까요?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7, 26~28)


인자의 살과 피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한다면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이 곧 영생을 얻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 유월절은 에덴동산의 생명과라 말씀하셨던 겁니다.  그러므로 인류는 구원 얻기 위해 유월절을 지켜야 하며 유월절을 지키는 것만이 영생을 소유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고 하신 것입니다(누가복음 22:15). 이 말씀 속에는 유월절만이 영생을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류에게 지키라고 예수님께서 전하여 주신 유월절이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폐지되고 맙니다. 생명과의 진리인 유월절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인류에게는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회복하기 위해 재림이라는 역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7~28)

두 번째 나타나심, 즉 재림은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는 처음부터 인류를 위하신 하나님의 마음이며 단 한 번도 변치 않은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두 번째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재림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에덴동산의 생명과인 ‘유월절’을 회복해야만 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두 번째 오셔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이 바로 이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토록 원했던 ‘생명과’를 우리에게 찾아주는 것. 그룹천사들과 화염검으로 막아놓았던 생명과로 가는 그 길을, 오직 하나님만이 열어주실 수 있는 그 길을, 유월절이라는 진리로 알려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 이 땅에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이사야25:6~9)

오래 감추어졌던 생명을 주는 포도주의 진리를 다시금 회복해 주시는 그 분이 있다면 그 분이야말로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안상홍님은 1600년 간이나 사라지고 감추어졌던 생명의 진리 새언약 유월절을 이 땅에 다시 회복시켜 주신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 인용: 패스티브닷컴


2015년 8월 19일 수요일

행복스위치



지금은 좀 힘이 들지만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찾아 오리라 희망을 갖고

오늘도 힘차게 시작되는
아침을 맞이 하여봅니다^^ 

하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 두 가지는 
눈물과 웃음이라고 합니다.

눈물에는 치유의 힘이 있고, 
웃음에는 건강이 담겨 있습니다.

기쁠 때, 몸 안팎으로 드러나는 가장 큰 행동이 웃음입니다.

내 마음 속에는 
특별한 스위치가 있습니다.
오직 당신만이 켜고 
끌 수 있는 행복스위치입니다.

지금 
내가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지 않다면 나도 모르게 
그 스위치를 꺼 놓고 있는건 아닐까요?

행복은 누리고,
불행은 버리는 것입니다.

소망은 쫒는 것이고,
원망은 잊는 것입니다. 

기쁨은 찾는 것이고
슬픔은 견디는 것입니다. 

건강은 지키는 것이고
병마는 벗어나는 것입니다.

사랑은 베푸는 것이고
미움은 삭이는 것입니다.

가족은 살피는 것이고
이웃은 어울리는 것입니다.

자유는 즐기는 것이고 
속박은 날려 버리는 것입니다.

웃음은 우리를 위한 것이고
울음은 어둠을 위한 것입니다.

기쁨은 바로 행복입니다. 
행복은 누가 만들어 줄까요?

그것은 바로 내 자신입니다..

나의 마음속 
행복스위치를 다시 켜보세요!

밝고 환한 행복이 켜집니다~

- 출처:  좋은 글 꾸러미 


2015년 8월 14일 금요일

하나님의교회가 좋은 이유는?



하나님의교회가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교회는 초대교회의 진리를 지키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900년 가까이 가려지고 사라졌던 새언약 진리를 회복하고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하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진심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모든 성도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연합하고 화합하며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국내를 비롯한 전 세계 정부와 단체로 부터 봉사활동에 대한 상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  미국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이 꾸준한 봉사활동으로 미국 대통령자원봉사상을 받은 내용을 소개할까 합니다.


지난 6월 23일 미국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대통령자원봉사상 단체 최고상인 ‘금상’을 수상했습니다.
미국 대통령자원봉사상은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자원봉사상으로, 미국 국민으로서 12개월 동안 일정시간(연간 1000시간) 이상 꾸준히 자원봉사를 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한다고 합니다. 순수 자원봉사활동만 공적에 포함되며, 활동시간에 따라 금상∙은상∙동상을 주며, 특별히 4000시간 이상 봉사활동을 한 경우에는 최고등급의 ‘라이프타임상’을 수여합니다. 하나님의교회 미국 성도들은 2011년, 2014년에도 이 상을 받았으며, 2011년에 받은 상이 자원봉사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라이프타임상입니다.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은 미국 각지에서 어려운 이웃과 지역사회를 위해 다양하고 실질적인 자원봉사를 전개해왔습니다. 일례로 뉴욕, 콜로라도, 캘리포니아, 뉴저지, 플로리다, 텍사스 등 각 주에서 헌혈행사를 개최해 혈액 부족으로 위기에 처한 이들의 생명을 구했고, 허리케인∙토네이도∙산불∙홍수 등 예기치 못한 재난으로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달려가 피해복구와 구호 활동으로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6월 콜로라도주 덴버에서는 네팔 지진피해민돕기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개최해 실의에 빠진 네팔 국민들에게 힘과 용기를 전하는 동시에 미국민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냈습니다.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교회의 진정성에 감동한 아르준 쿠마르 카르키 주미 네팔 대사가 진심어린 고마움을 표시하며 감사장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이 받은 미국 대통령자원봉사상 금상 메달과 표창장.

이 뿐 아니라 수도 워싱턴D.C.는 물론 뉴욕, 시애틀, 샌디에이고, 볼티모어, 멤피스 등 여러 도시에서 거리와 공원, 하천, 산림 등 삶의 터전인 환경을 정화하고 시민들의 환경보호의식을 고취시켰습니다. 이밖에도 장애인∙독거노인가정 위문, 노인요양원 위문, 환우돕기행사 서포터즈, 학교폭력 방지 청소년 지원활동, 노숙자를 위한 양말 모으기, 어린이병원 기부를 위한 담요 모으기, 제설작업, 도서 기증, 아동 학용품 지원, 초등학교 놀이터 짓기 지원, 경찰관∙소방관 기금 지원 등 크고 작은 자원봉사를 통해 이웃에게 힘과 용기를 전해왔습니다.
 

특히 하나님의교회의 자원봉사활동은 전 세계적입니다. 실제로 북미대륙을 비롯해 중남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전 세계 대륙에서 환경정화, 헌혈, 이웃돕기, 재난구호 등 다양한 활동으로 현지인들에게 많은 감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지난 4월 대지진이 발생한 네팔에서는 정부조차 혼란에 빠진 가운데 노란 조끼를 입은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이 맨손으로 구호활동에 나서 현지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교회는 이재민들에게 천막과 생수, 식료품과 생필품 등 1억 원 상당의 구호품을 지원했고, 6월 기준으로 네팔 각지에서 연인원 1만 명가량이 복구와 구호활동을 펼쳤습니다.


그 외에도 영국 홍수 피해 복구 및 구호활동, 페루 지진 피해지역 임시주택 설치 및 의료 봉사, 뉴질랜드 홍수 피해 복구, 필리핀 태풍 피해 구호활동 및 식사 지원, 에콰도르 화산재난지역 이재민 구호활동, 과테말라 지진 피해민돕기, 일본 지진피해 구호활동, 캄보디아 홍수피해 성금 및 구호품 지원 등 여러 나라에서 고통 받는 이웃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이미 국내에서도 3회에 걸친 대통령 표창에 의해 증명된바 있는데요, 하나님의교회는 지난 달 8일 ‘제20주년 바다의 날 유공자 포상 전수식’에서 다년간 전국 각지에서 해양환경보호와 해양재난구호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단체표창을 수상했고, 앞서 4일에는 지난해 부산에 쏟아진 대규모 집중호우 피해 복구를 비롯해 재난구호에 이바지한 공로로 국민안전처장관 표창도 받은 바 있습니다.

주는 사랑과 섬김의 본을 보여주신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 전 세계인들에게 가족을 보살피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봉사하고자 노력하는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의 진실한 사랑과 나눔은 그래서 언제나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교회는 하나님의 진리를 지키고 행해서 좋고,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서 좋습니다^^



2015년 7월 30일 목요일

비드온 슈바임


사람들이 배를 타고 긴 항해를 하고 있었다. 
그 배에는 로마 사람, 희랍인, 페니키아 사람을 비롯한 여러 나라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유대인도 있었다.
배는 아무 일 없이 항해를 하다가 갑자기 해적의 습격을 받았다.
배에 탔던 사람들은 모두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다.
노예로 전락한 사람들은 시장으로 끌려 나가 한 사람씩 값이 매겨져 일꾼으로 팔려갔다.
맨 먼저 크고 힘센 로마 청년이 작업장 일꾼으로 팔려갔다.
그 다음 아름다운 희랍 여인이 어떤 사람에게 팔려갔다.
드디어 유대인 차례가 되었다.
노예 상인은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사람은 유대인입니다. 몸도 좋고 일도 잘합니다."
그러자 사람들 중 얼른 금 몇 개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사람이 거기에 값을 더 얹어 불렀다.
처음의 사람은 그보다 더 비싸게 값을 불렀다.
또 다른 사람이 그 위에 더 많은 돈을 얹어 몸값을 불렀다.
이렇게 몇 차례 몸값이 엎치락뒤치락한 끝에 유대인은 가장 먼저 몸값을 불렀던 사람에게 팔리게 되었다. 그 배에 탄 사람들 중 가장 비싼 값이었다.
유대인 노예를 산 그 사람은 노예를 데리고 시장을 떠났다.
그런데 얼마쯤 가다가 유대인 노예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유대인 노예를 산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유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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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드온 슈바임(Pidyon Shevuyim)’이란 히브리어로 ‘사로잡힌 자를 사온다’는 의미다. ‘유대인은 붙잡힌 동족을 반드시 해방시켜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즉, A라는 유대인이 노예가 되면 이를 보거나 알고 있는 유대인은 반드시 A의 몸값을 치르고 그를 구출해내야 한다.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누가복음 15:4~7)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롬2:28~29)




-출처: 패스티브닷컴


2015년 7월 28일 화요일

위대한 생명의 설계자는 누구일까?



다음 질문에 대해 당신은 어떤 답을 하겠는가?

첫째, 63빌딩의 설계도가 있을까?
둘째, 63빌딩의 설계도가 있다면 설계자가 있을까?
셋째, 설계도를 보면 설계자의 능력을 알 수 있을까?
넷째, 건물에 설계도가 있는 것처럼 생명체에게도 설계도가 있을까?


기계나 장치를 만들 때 사용 목적에 맞는 기구, 구조, 치수, 재료 등을 결정하고, 이에 따라 그 개요를 그린 도면을 설계도라고 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물, 가구, 자동차, 휴대폰 등 모든 사물들은 각자의 필요에 따라 설계되었다. 그리고 설계도가 있다는 것은 반드시 설계자(Designer)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 설계도를 보면 설계자의 지적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단순한 개집을 짓는 것과 복잡한 최첨단 빌딩을 짓는 것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부품의 갯수는 대략 2만 개 정도라고 한다. 그 2만 개의 부품이 설계도대로 완벽하게 결합되어 조여지고 각자의 자리에 위치했을 때 자동차는 시동이 걸리고 거리를 질주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중 단 하나라도 빠지거나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자동차는 결함이 생기고 달릴 수 없는 고철덩이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러한 복잡하면서도 체계적인 원리 속에서 발명품을 만들어낸 과학자들을 위대하다고 평가한다.

만일 누군가가 “자동차는 저절로 생긴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 말을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2만 개의 부품이 공중에 흩어졌다가 각기 그 위치에 저절로 떨어져 알아서 조립되었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볼까? 사실 그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사물을, 그것이 크든 작든 저절로 생겨난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처럼 호흡이 없는 무생물의 경우에도 설계도가 있고 설계자가 있는데, 하물며 살아 있는 생명체는 어떠할까. 놀랍게도 생명체에도 설계도가 있다는 사실이 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과학자들에게 따르면, 사람은 약 50~6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각각의 세포에는 염색체가 있고, 그 염색체 안에는 DNA라는 유전물질을 갖고 있다. DNA는 아데닌(Adenine), 구아닌(Guanine), 사이토신(Cytosine), 타이민(Thymine) 4종의 염기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 이니셜을 따서 A, G, C, T로 표시한다. 이들은 DNA의 이중나선 구조에서 A와 T, 그리고 G와 C가 서로 짝을 이루며 A는 T와, 그리고 G는 C와 반드시 마주 보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들의 조합에 의해 서로 다른 아미노산이 형성되고 이 아미노산들이 모여 하나의 세포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세포가 50~60조 개가 모여 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A와 T, 그리고 G와 C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세포 하나의 설계의 정보량은 A4 용지 1백만 페이지에 해당하며 이는 백과사전 1000권의 분량에 해당한다고 한다. 실로 엄청난 정보량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엄청난 정보량을 담은 세포 하나하나가 모여 50조 개 이상을 이루어야만 살아있는 사람이 되는 것인데, 그중에 단 하나만 잘못되어도 제대로 발육하지 못하고 몸에 이상이 생기게 된다. 그야말로 가장 복잡하고 섬세하고 완벽한 설계도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사람이다.

한 과학잡지에 의하면, 인류가 현재 전 세계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정보데이터의 양이 295엑사바이트에 해당한다. 참고로, 1엑사바이트는 10억 기가바이트와 같은 양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인간의 DNA가 가진 저장능력에 비하면 이 엄청난 양은 비교가 안 된다. 295엑사바이트의 정보량은 DNA의 저장능력의 100분의 1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우리의 ‘몸’ 설계도는 인류가 측량하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규모다.

모든 생명체에는 각각의 설계도가 있고 그 설계도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견해다. 곧 우리 몸 하나하나의 세포를 들여다보면 나를 존재케 한 설계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체가 존재하는 데 있어 설계도가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이는 생명을 설계한 설계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가장 복잡하고 정밀한 설계도를 설계하셨다는 것은 설계자의 능력이 가히 측량할 수 없는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그분을 우리 영혼의 창조자,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히브리서 3:4)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이사야 40:26)

지금, 내가 태어나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은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의 나를 있도록 설계하신 설계자,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 그 누구도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과정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친히 성경의 기록을 통해 당신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하나님을 찾아가도록 권고하고 계신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을 찾아야 하고 우리를 만드신 창조자를 만나야 한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로마서 1:20)

<참고자료>
1. ‘인류가 축적한 정보량과 인간 DNA 비교하니’, 지디넷코리아, 2011. 2. 12.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10211172659&type=det
2. ‘DNA의 분자구조’, 두산백과
3. ‘지적설계’, 위키백과
내용출처: 패스티브닷컴

2015년 7월 24일 금요일

희생을 통해 만들어지는 진정한 용기

우리는 흔히 자신을 평가할 때 나는 얼마나 용기가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 자문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용기란 것이 지극이 주관적이다보니 나에게 있어서는 용기 있는 행동이었지만  타인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럼 용기에 관한 기준이 나와 남과의 사이에서 다르게 적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그 안에 욕심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욕심이 가득한 사람은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가거나 손해를 입을 일이 있으면 주위를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욕심대신 겸손한 성품을 가진 사람은 이것이 나에게 있어 손해가 있더라도 타인을 위해 양보할 수 있는 것이라면 굳이 그 상황 속에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설사 내게 조금은 피해가 있는 일이라도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통해 잘못을 지적하고 똑같은 실수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정중히 타이릅니다.

물론 세상 많은 사람들 중 일부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잘못을 사과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때는 지혜와 인내를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몇 안되는 오만 방자한 사람들 때문에 내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린다면 그또한 옳은 것이라 할 수 없겠죠...

역사를 통해서 보면 진정한 용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은 인물들이 참
많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바로 자신의 희생을 통해 대의를 이루고,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진실을 위해 결연히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 진정으로 필요한 용기란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입니까?





2015년 7월 21일 화요일

말 한마디의 힘

우리는 흔히 농담과 진담을 섞어가며 수없이 많은 말을 쏟아냅니다.
그런데 그 말 속에서 때론 상대의 웃음을 이끌어 내기도 하지만 상처와 갈등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왜일까요?

말은 그 사람의 잠재된 의식이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중하고 겸손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다른 이로부터 존경받고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거겠죠..

부정적인 말은 상대의 마음을 닫게 하고 오히려 사람을 잃게 만든다는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선하고 긍정적인 말로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 준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좀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요^^



영상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qdaZ7szm9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