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28일 화요일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내가 태어나 알지 못하고 기억도 못하는 사이,어머니는 늘 
내 삶에 일부가 되어 나의 햇빛이 되고, 때론 그늘이 되어 
나를 키우고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늘 함께 해주었던 어머니의 곁이 너무 익숙해서 
고맙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가 내 곁을 떠났습니다. 
다시는 오지 못할 먼 길을 혼자 가셨습니다.  

그 날... 나는 깨달았습니다. 
어머니가 있어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어머니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 분이었는지...

어머니의 모습도, 음성도 희미해지는 기억의 저편 너머로 
다시 어머니를 부릅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영상출처: KBS-tv동화 행복한 세상
http://www.kbs.co.kr/1tv/sisa/happytopia/vod/review/index,1,list,2.html

2015년 4월 23일 목요일

벚꽃 눈...

다봇하고 예쁘게 피어올랐던 벚꽃이 그 아름다움을 다 느끼기도 전에 며칠째 내린 밉살스런 봄비를 맞아 다 지어져 가고 있네요...

그런데 봄비가 흠뻑 내린 오후.. 아쉬움을 달래려 나선 벚꽃 나무 아래에 아쉬움 대신 감동의 탄성이 흘러 나왔습니다.

벚꽃이 빗물과 함께 떨어져 땅과 나무에 내렸는데 마치 함박눈을 보는 것처럼 참 예쁘게 쌓여져 가고 있었습니다.

지는 아쉬움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어 주는 벚꽃이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덕분에 추억을 마음에 담아 사진에 남깁니다...









2015년 4월 21일 화요일

하늘의 축복을 받은 영적 ‘무수옹(無愁翁) 이 되는 길...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2015년을 맞이했을 겁니다. 매일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하지만 힘들고 걱정스러운 일이 더 많아 보이는 것이 우리네 삶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옛이야기 중에는 복을 타고나서 걱정을 모르는 노인이 있습니다
이른바 무수옹(無愁翁) 설화입니다.
 
무수옹은 열세 자녀를 두었습니다. 자식들 모두가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여 서로 모시려 하자, 무수옹은 한 달씩 돌아가면서 아들의 집에서 살고 윤달에는 딸의 집에서 지냈습니다. 어느 집에 가든지 행복한 웃음이 넘쳐났으니 과연 걱정이 없는 노인이었습니다. 이 소문을 전해들은 임금은 노인을 시험해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노인을 불러 진귀한 구슬을 주면서 언제든지 가져오라 하면 가져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임금에게서 귀한 구슬을 받은 노인은 기쁜 마음으로 강을 건너는데 뱃사공이 구슬을 구경하다가 그만 강물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실은 임금이 일부러 그러도록 시킨 것인데, 노인의 복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던거죠..
 
아주 난처한 상황에 빠진 노인은 이 같은 사실을 자식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자식들은 아버지를 위로하며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했는데 그때 며느리가 근심에 젖은 시아버지를 봉양하려고 저녁을 지으려고 생선 몇 마리를 사와 배를 갈랐는데 한 생선의 뱃속에서 구슬이 나왔습니다. 다름 아닌 노인이 임금에게서 받은 구슬이었습니다. 노인은 구슬을 들고 궁궐로 들어가 그간 구슬에 얽힌 이야기를 임금에게 전했습니다. 노인의 이야기를 들은 임금은 무릎을 탁 치며 하늘이 내린 복은 어쩔 수 없다며 감탄했다고 합니다.
 
과연 엄청난 복을 타고난 노인입니다. 누가 며느리가 사온 물고기에서 구슬이 나올 줄 알았을까요.. 세상에는 천복을 타고난 자들이 있다고 하는데, 무수옹이 꼭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무수옹만큼이나 하늘의 복을 타고난 자들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 성경 인물 중 하나가 베드로 입니다. 그도 무수옹의 며느리와 같은 지극한 봉양으로 예수님을 섬겼고 그리스도를 향한 악한 자들의 훼방을 물리친 기록이 있습니다.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중략)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17:24~27)
 
이처럼 늘 넘치는 하늘의 축복을 받아 하나님을 섬기고 믿음을 더했던 성경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있는데요..그들의 축복이 얼마 만큼 이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신명기 28:6~8)
 
이들도 대단한 복을 타고난 자들입니다. 나가는 곳마다 복을 받고 들어가는 곳마다 복을 받으니 필연코 삶 자체가 축복으로 넘친다는 뜻입니다. 무수옹처럼 말이죠. 하지만 그 복이 저절로 생겨난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그들을 복된 존재로 만든 비밀은 무엇일까요?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명기 10:13)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신명기 28:1~6)
 
복의 비결은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규례는 인생으로 하여금 축복과 행복을 받게 하는 열쇠가 분명합니다. 인생들은 규례를 지킴으로 하나님께 복을 받고 덤으로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갈 희망과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거룩함과 축복을 함께 받을 수 있는 규례를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바로 '새언약 안식일'입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세기 2:3)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12:8)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안식일 규례를 지키는 교회부터 찾아야 합니다. 진리는 가까운 곳에 있다는 말처럼 하나님의 안식일 규례를 지키는 진리교회도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곳을 찾아 무수옹보다도 더 복을 타고난 주인공이 되는 것은 어떨까요?
 
- 인용: 패스티브닷컴




2015년 4월 15일 수요일

행복한 의사


젊어서 들어 온 섬에서 칠순을 맞이한 어느 의사 한 명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의사란 힘들고 아픈 사람들을 위한 평범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사랑했던 아내를 병으로 사별한 후 섬에 들어와 섬 주민들의 소중한 이웃이 되기까지 그에게 가족이 되어주었던 섬 사람들의 그를 위한 특별한 생일 잔치...

그 날 , 백발의 의사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아들, 딸들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 감동의 이야기, 같이 감상해 보세요^^


                                              출처: KBSDocumentary



2015년 4월 8일 수요일

증오와 폭력을 부르는 헤이트스피치... 하피모를 통해 재현되다.



한국인에 대해 '나가라' '죽이자' 등의 구호를 외치는 시위 현장은 독일 나치 시대를 연상시킨다. 일본 사회에 파시즘이 싹트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헤이트스피치는 언어폭력을 뛰어넘는 나이프().”
 
반한(反韓)을 넘어 혐한(嫌韓) 감정으로 뭉친 일본의 우익단체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의 시위대가 조선인은 나가라”, “재일한국인을 죽이자”, “독을 먹여라는 등의 증오발언과 차별을 선동하는 모습에 대해 일본 민주당 소속의 아리타 요시후 의원이 한 말이다. 그는 최근 반한시위와 차별을 금지하는 법 제정을 촉구하며 헤이트스피치(hate speech)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초당파 연구회를 결성했다.
 
헤이트스피치는 증오발언, 증오연설, 혐오발언, 증오언어 등으로 번역돼 쓰이고 있다. 헤이트스피치의 대상은 인종, 성별, 종교, 민족, 정치적 견해, 사회적 계급 등 특정한 범주의 사람들로, 그들에 대한 편견을 갖도록 부추기는 것이 목적이다. 헤이트스피치를 들은 후 대중들은 시키지 않아도 헤이트스피치의 대상이 된 사람들을 증오하고 혐오하며 언어적 폭력과 극단적인 경우 살인도 불사하지 않는다.
 
나치즘 지지자들, 독일의 국민들은 히틀러의 연설에 선동됐다. 그들은 히틀러가 언급한 아리아인(게르만인)의 우월성과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를 지지했다. 194110, 홀로코스트의 서막을 알리는 헤이트스피치, 즉 증오발언이 독일 내 군인들에게 하달됐다. “여러분은 단순한 전사가 아니요, 민족 이념의 가차 없는 수행자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군사들은 인간 이하의 유대인들에게 복수할 것을 명하는 바이다.”
 
본격적으로 유럽 전역에서 인간 이하의 죽어 마땅한 유대인들의 인종청소가 시작됐다. 국민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유대인을 죽이는 일에 스스럼없이 동참했다. 공무원들은 유대인의 명단을 뽑고, 경찰과 역무원들은 유대인들을 수용소로 이동시키기 위해 역에 집결시키고, 기관사들은 열차를 운행했다. 수용소의 군인들은 줄지어 서 있는 남녀노소 유대인들을 노동에 착취할 사람과 처분할 사람으로 선별하고, 공중목욕탕 수도관에 물 대신 가스를 주입했다.
 
600만 명의 유대인을 죽이는 전대미문의 도살은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진행되었다. 한 사람의 연설에 선동되어 아무런 죄의식 없이 600만의 인명이 불과 몇년 사이에 무차별적으로 살상된 것이다. 대중들의 손에 흉기가 없었지만 그들의 마음에 증오라는 나이프가 들어앉아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과거 2천 년 전 유대인들이 그러했다. 이스라엘에 오직 유대교만이 존재하고 가장 우월하다는 민족적 교만과 자만이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과 그 제자들과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을 무차별적으로 핍박하고 살상하고 집단적 따돌림을 서슴치 않았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요한복음 10:30~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요한복음 7:16~20)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사도행전 24:5)
 
당시 유대교인들과 제사장들은 신흥종교로 비쳐진 예수님과 하나님의교회에 증오발언을 쏟아내며 박해하고 결국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다.
 
일본에서는 민족적 우월의식과 반한감정이 도를 넘은 일부 일본인들의 입에서 한국인을 죽이자는 증오발언이 표출되고 있다. 이를 본 한국인들은 누구라도 중대한 범죄임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증오에 휩싸인 일본인들의 표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언제 어디서나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으리라.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은 이 같은 증오범죄가 한국 안에서 발생하고 있다. 한국판 파시스트이자 나치스트요, 재특회 시위대라 할 수 있는 그들은 전후(戰後) 한국에 정착한 장로교와 기타 개신교단 일부만을 정통이라 자부하며 신앙적 우월감에 빠져 있다. 그리고 마치 2천 년 전 유대교인들과 제사장들처럼 신흥종교들을 죽이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들이 성경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하는 일은 이단세미나를 다니며 증오발언을 쏟아내고, 개종을 강요하며 신앙의 자유를 짓밟고 인권을 유린하는 일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자만심에 젖어 일말의 죄의식도 없이 마녀사냥 식으로 증오발언을 쏟아내며 사람들을 선동한다는 것이다. 2천 년 전 유대인들의 망령이 되살아난 듯, 히틀러가 부활한 듯 그들은 군중심리를 악용하여 참된 진리교회를 사회악으로 폄하한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것은 단지 은전 30냥을 얻기 위해서였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증오해 죽인 것도 실상은 유대인들의 경제력을 탈취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일본이 한국을 증오하는 이유도 자국경제는 침체하나 한국은 약진하며 세계시장을 잠식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의교회에 대해 증오발언을 쏟아내며 비방하는 데 혈안인 진 모 목사, 탁 모 씨도 실상 종교브로커로서 돈벌이 수단으로 여길 뿐 하나님을 위한다는 것은 포장일 뿐이다.
 
아울러 기성 개신교단에서도 집단우월감에 빠져 신생교리에 대해서는 무조건 이단시하는 토양을 제공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했던 유대인들의 증오범죄를 규탄해야 할 기독교인들이 오히려 유대인처럼 우월의식에 도취되어, 사도들처럼 성경대로 행하는 진실된 교회를 비방하고 이단으로 정죄하며 대중을 선동하는 이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증오의 대상 속에 참하나님이 숨어 계신다면 뒷감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

출처: 패스티브닷컴
https://www.pasteve.com/?m=bbs&bid=B2BibleCovenant&uid=15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