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31일 화요일

운명을 바꾼 말 한마디 - 항우와 유방


영화나 책을 통해 한번쯤 접해봤을 초한지의 주된 내용은 항우와 유방의 대결과 극적인 승패의 갈림길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항우는 초()나라에서 대대로 장군직을 지낸 명문 귀족 출신에다가 키가 8척이 넘고 용모와 풍채가 뛰어나 그 모습만으로 사람들의 경외감을 불러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 유방은 같은 초나라 출신이었지만, 항우와는 달리 이름 없는 농민 출지신이었습니다. 미관 말직으로 재직하다가 죄인들을 풀어주고 그 죄인들을 모아 스스로 유격대장이 됨으로써 반군에 가담하게 되었는데 항우에 비하면 그의 출발은 참으로 초라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처음에 둘은 항량의 진영에서 함께 진의 수도 함양을 공략하는 대출정에 나서기도 했지만 권력이라는 욕망 앞에서 삶과 죽음을 겨루는 적으로 맞닥드리게 됩니다.

그러나 항우와 유방의 대결은 번번히 항우의 승리로 돌아갔고 그럴수록 항우의 자만과 독선은 더욱 심해져 갔습니다.
이 당시 항우가 항상 즐겨 썼던 말은 " 어떠냐?"로 자신의 지략과 용맹에 대한 절대적 충성만을 강요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항우는 독선과 의심이 깊어져 갔고 인재등용에 실패함에 따라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반면 미천한 출신에 지략과 능력이 부족했던 유방은 장량과 소하 같은 유능한 부하들의 말에 귀 기울일줄 알았고 한 때 항우 밑에 있다가 투항한 뛰어난 장군이었던 한신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 후방과 전방을 견고히 구축해 나갔습니다. 

유방은 모든 일을 결정하기에 앞서 "어떻하지?"라며 부하들의 의견을 늘 적극 수용하였는데 결국 이런 유방의 겸손한 통치는 많은 인재를 불러 모아 안팎의 힘을 키우고 결국 8년의 지리한 싸움에 최종 승자로 군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항우와 유방의 일하는 2000년 가까운 세월을 넘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이의 말을 경청하고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가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걸 알려주고 있습니다. 찬란한 미래는 결국 작은 것으로 부터 시작된다는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Jmc1Z596lGo

2015년 3월 26일 목요일

다윗의 뿌리가 세우신 하나님의교회




성경은 가장 오랫동안 인류에게 읽혀온 스테디셀러(Steady Seller). 전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6,500개의 언어 가운데 성경은 약 2,500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읽히고 있다. 이렇게 많은 언어로 번역되면서 세상에는 수많은 교파들과 수많은 교회들이 저마다 조금씩 다르게 성경을 해석하고 그 교리를 진리로 가르치고 있다. 과연 그 많은 교회 중 어느 교회가 성경을 하나님의 뜻대로 올바르게 해석하고 있을까.
성경에서는 오직 다윗의 뿌리만이 성경을 올바로 해석해주실 수 있다고 기록한다.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5:1~5)
 
요한은 밧모섬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인봉된 성경의 비밀을 개봉해주시는 다윗의 뿌리에 대해 언급했다. 예언 가운데 보좌에 앉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오른손에 가지신 책은 당연 성경이다. 그런데 이 계시 속에서 요한은 성경이 어느 누구도 펴거나 보거나 할 수 없도록 인봉돼 있다고 말했다. 성경의 비밀을 아무도 볼 수가 없어 답답한 마음에 크게 울었던 요한에게 한 사람이 다가와 다윗의 뿌리만이 인봉된 성경의 비밀을 풀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성경의 비밀은 유명한 목사도, 신학자도 아닌 오직 다윗의 뿌리만이 풀 수 있다. , 우리는 다윗의 뿌리가 세운 교회에 가야 성경을 올바르게 배울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마지막 때 다윗을 구하고 경외하는 사람들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후에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하고 말일에는 경외하므로 여호와께로 와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호세아 3:5)
 
말일(末日), 즉 마지막 때에 다윗을 경외하지 않고서는 결코 구원의 은총으로 다가갈 수 없기에 이 시대 우리는 반드시 다윗의 뿌리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6)
 
성경의 모든 비밀을 올바로 해석해주고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다윗의 뿌리는 바로 예수님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5장에 등장하는 다윗의 뿌리는 과연 초림 예수님일까 재림 예수님일까. 물론, 요한계시록은 이미 초림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다가 하늘로 올라가신 후 쓰여졌기 때문에 초림에 대한 예언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더욱 확실한 해답은 인봉이라는 단어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예언은 초림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구원의 말씀이 인봉된 후 다시 개봉할 역사에 대한 예언인 고로, 다윗의 뿌리는 재림 예수님이다. 그런데 초림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다시 오실 때, 수많은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도 함께 등장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마태복음 24:3, 24)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다윗의 뿌리인 재림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을까. 이 문제는 다윗의 뿌리만이 가지고 오는 확실한 증표로 해결된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이사야 55:3)
 
다윗에게만 주신 확실한 은혜는 영혼을 살리는 영원한 언약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뿌리인 재림 예수님은 반드시 영원한 언약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영원한 언약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받은 옛 언약이 아니다. AD 80년경 쓰인 히브리서는 이 영원한 언약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히브리서 13:20)
 
히브리서는 영원한 언약에 대해 논하며 를 언급하고 있다. 이는 영원한 언약에는 반드시 예수님의 피가 내재돼 있어야 함을 뜻한다. 때로는 아주 중요한 약속을 하며 변치 않겠다는 의지로 혈서를 쓰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영생을 약속하시며 피로써 절대 변치 않는 영원한 언약을 세워주셨다. 한정적이고 유한하지 않은, 무한하고 영원한 언약의 피는 무엇일까.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6~28)
 
이 장면은 유월절 성만찬 자리다. 예수님께서는 이 자리에서 떡을 일컬어 당신의 몸’, 포도주를 일컬어 당신의 피라고 하시며 이를 보다 확실하게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다. 반드시, , 확실하게 죄를 사해주시고 이로써 구원을 주시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이와 동일한 장면을 묘사하며 누가는 새 언약이라고 기록했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20)
 
따라서 영원한 언약은 예수님께서 피로 세워주신 유월절 새 언약이다. 다윗이 가지고 올 확실한 증표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므로 말일에 새 언약 유월절을 가지고 나타나신 분은 요한이 계시를 통해 보았던 다윗의 뿌리가 된다. 다윗의 뿌리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성경을 올바로 해석할 수 없다. 만약 다윗의 뿌리가 아니면서, 즉 새 언약 유월절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면서 성경을 해석한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베드로후서 3:16)
 
다윗의 뿌리로 오시는 재림 예수님은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 어느 누구도 해석할 수 없었던 성경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주신 분이다. 그러므로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고 있는 다윗의 뿌리가 세우신 교회라야 올바로 성경을 해석하는 진리 교회다.


- 출처: 패스티브닷컴


2015년 3월 11일 수요일

우유 한 잔으로 만든 행복나무



댓가를 바라지 않는 진실한 마음이 바탕이 될 때
뿌리를 내리고 잎을 내어 아름다운 나무로 자라나는 열매가 있습니다.

그 열매는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무엇인가를 바라고 내미는 사랑은 항상 원망과 불평의 썩은 열매로 우리 앞에 떨어지게 되지만 조건없는 사랑은 이미 그 향만으로도 마음이 즐거워지는 아름다운 열매로 다가 오게 됩니다.



여기 "친절을 베풀 때는 절대 돈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엄마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허기에 지친 방문 판매원에게 우유 한 잔을 수줍게 건넸던 한 소녀가 있습니다.  결국 마음으로 부터 건넨 그 한 잔의 우유는 훗날 그녀의 생명을 살리고 감사를 더할 수 있는 행복의 나무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여러분도 사랑을 베풀 준비가 되어 있나요?
그럼 앞으로 자라날 아름다운 나무를 생각하며 그 사랑을 건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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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QMhD6rSdxsY

2015년 3월 8일 일요일

한 사람의 발자국


한 노인이 하나님과 함께 해변을 거닐었습니다.

해변에는 그가 지나온 인생의 여정을 따라 두 명의 발자국이 나란히 찍혀 있었습니다.

하나는 노인의 발자국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와 동행하신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발자국을 유심히 바라보던 그는 생애 가장 큰 시련이 닥쳤던 시기에 하나의 발자국만 찍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노인은 하나님께 불평을 터뜨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평탄한 길을 갈 때에는 저와 동행하시다가 힘든 시련이 올 때는 왜 함께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힘들 때 더 도와주시고 함께해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버린 적이 없다. 항상 너와 동행하였다. 아무런 위험이 없는 평탄한 길에서는 너와 나란히 걸었지만, 위험이 닥쳐오면 너를 업고 모든 시련과 맞서 싸우며 걸었다. 시련과 고난의 때에 남겨진 그 발자국은 너의 것이 아니라 너를 업고 걸어간 나의 발자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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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이사야 43장 1~2절)

2015년 3월 5일 목요일

편지.. 그 소중한 이야기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
가슴속 울려주는 눈물젖은 편지
하이얀 종이위에 곱게 써내려간
너의 진실 알아내곤 난 그만 울어 버렸네


멍뚫린 내 가슴에 서러움이 물들면
떠나버린 너에게

사랑노래를 보낸다.


-어니언스의 '편지' 중


편지 속에 담겨진 수많은 사연 중 가장 많은 내용은 '사랑'일 겁니다.

그럼 그 다음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감사가 아닐까요..

부모님에 대한 감사, 선생님과 지인에 대한 감사, 아내에 대한 감사 등.. 어떻게 보면 나이가 들어갈 수록 감사한 일과 감사한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거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 편지로 시련과 실패를 이겨내고 '실패한 인생'에서 '행복한 인생'으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이룬 사람이 있습니다. 

좌절과 죽음의 문턱 앞에서 그가 선택한 '감사 편지' 그 편지는 작고 소소한 일상으로 묻혀있던 자신의 감성을 일깨웠고 그 감사를 통해 삶의 의미도, 기쁨도 되찾아 주는 귀한 양분이 되었습니다. 

결국 행복이란 감사로 부터 시작된다는 소중한 진실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오늘 부터, 주위의 사람들에게 미처 다하지 못했던 감사 인사를 편지를 통해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영상 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cZCoW5DSXwM

2015년 3월 2일 월요일

100원의 사랑


내게 조금만 더 여유가 있다면... 내가 성공한다면... 내가 지금보다 더 잘 산다면...
이런 말끝에 찾아 오는 말은 무엇일까요?

바로 기부입니다.

어렵고 힘든 이들을 위해 내미는 나의 마음이 기부라는 손길을 통해 이뤄집니다.
하지만 정작 많은 사람들에게 기부란 내 것을 먼저 채우고 남는 것을 베푸는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 속에 빠져 있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하지만 사랑은 지금 내가 가진 시간과 능력과 경제적 도움을 크고 작고에 상관없이 나눌 수 있는 마음으로 부터 시작됩니다.

사랑은 바쁘지 않습니다. 단지 내 마음만 바쁠 뿐입니다.

잠시만 여유를 가지고 나와 내 주위를 바라보는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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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Qg19agN52gk

2015년 3월 1일 일요일

멜기세덱과 하나님의 관계

성서에서는 어떤 인물에 대해 설명할 때 대부분 ‘누구의 자손’이며 ‘누구의 아들’로 말한다. 예를 들어 요나의 경우도 이렇다.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요나 1:1)

그런데 성경에는 누구의 아들인지 또는 누구의 자손인지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럴 때면 그 인물에는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 바로 ‘멜기세덱’이 그중 한 사람이다. 멜기세덱은 살렘의 왕이면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고대시대에는 제사장과 왕을 한 사람이 겸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그런데 멜기세덱은 살렘의 왕으로 있으면서 제사장도 겸직했다. 그는 아브라함이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오자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축복한 인물이다.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세기 14:17~20)

멜기세덱이 특별한 이유가 여기 있다. 왕으로 제사장을 겸직한 것도 평범하지 않은 일이지만 그 시대 떡과 포도주로 제사를 드리는 경우도 없는 일이다. 과연 멜기세덱에게 숨겨진 하나님의 비밀은 무엇일까. 그 내용은 1,500여 년이 지난 신약성경 히브리서에서 나와 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히브리서 5:8~10)

멜기세덱은 바로 예수님을 나타낸다. 예수님은 우리 영혼의 왕이시다. 이와 함께 구원을 위한 대제사장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래서 다윗은 훗날 오실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을 이렇게 전했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주의 우편에 계신 주께서 그 노하시는 날에 열왕을 쳐서 파하실 것이라 (시편110:4~5)

멜기세덱이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로 축복을 준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떡과 포도주로 죄사함의 축복을 주신 것, 이 또한 멜기세덱이 예수님을 나타내는 증거가 된다.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7, 26~28)

이런 이유에서 사도 바울은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서를 통해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의 반열과 같은 대제사장이심을 설명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히브리서 5:8~10)

그렇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멜기세덱은 분명 예수님을 나타내는 인물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사도 바울은 히브리서를 통해 멜기세덱에 대해 언급하며 예수님과 연관지었다. 둘의 관계가 예언과 성취에 놓여 있음을 의심할 여지없이 증거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에 나오는 성경 구절에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히브리서 5:11~12)

사도 바울은 멜기세덱에 관하여 할 말이 많았던 부분을 앞서 설명해 놓고 왜 바로 이어 해석하기 어렵다고 했을까. 과연 멜기세덱에 대해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은 무엇일까. 사도 바울은 7장에서 그 부분에 대해 말했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히브리서 7:1~3)

멜기세덱이 살렘 나라의 왕이자 하나님의 제사장임을 우리는 앞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했고 아브라함으로부터 십일조를 받았던 사실도 확인했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아는 바이다. 그런데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는 말씀은 무엇을 뜻하는가. 성경에 ‘누구의 아들’로 표기하지 않았던 이 부분, 이것에 감춰진 비밀은 과연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이런 이유로 멜기세덱이라는 인물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해석하기 어렵다고 했다. 멜기세덱은 예수님, 이렇게만 공식이 이뤄진다면 어려울 것이 없는 예언이지만 이렇게 해석되기에 예수님은 아비도 어미도 족보도 가지고 있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마태복음 1:1)

요셉과 마리아라는 아버지, 어머니를 둔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족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위에서 말한 ‘아비도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12:50)

이 땅에 태어난 사람치고 아비나 어미가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아비도 어미도 없다는 이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믿음을 가지지 않은,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라는 뜻이다. 이 예언대로라면 멜기세덱은 불신자의 가정에 태어나야 한다. 그러나 초림 예수님은 아비, 어미인 요셉과 마리아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 가정이었다.

또 족보도 없다는 것은 이스라엘 족보에 이름이 없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민족치고 이스라엘의 족보에 이름이 없을 수 없으므로 족보가 없으려면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이방인이어야 한다.

멜기세덱의 이 모든 조건에 부합되기 위해서는 재림이 필연적이다. 성경의 예언은 일점일획도 변함없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히브리서 7장의 기록된 멜기세덱의 조건을 갖추기 위해 예수님께서 두 번째 오심을 사도 바울은 9장에 이어 기록하고 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7~28)

멜기세덱의 예언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 오시는 재림 예수님 그는 바로 생명의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님이시다. 멜기세덱처럼, 초림 예수님처럼 떡과 포도주로 영생의 축복을 주신 재림 멜기세덱 그는 과연 누구인가.

출처: 패스티브 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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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교회는 멜기세덱의 증거인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성력 1월14일 저녁에 예수님의 살과 피로 상징된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고 기념함으로써 우리의 구원을 위해 두 번째 오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원한 생명의 축복을 허락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생명의 진리를 가지고 오신 분이 바로 안상홍님 입니다. 안상홍님은 AD325년  폐지된 이후 1900년간 감추어졌던 유월절 진리를 이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될 수는 결단코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2000년 전과 마찬가지로 두 번째 오신다고 하셨고 그 약속을 유월절 진리로 증거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교회는 안상홍님을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하여 따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성경을 믿어야 하고, 성경을 믿는다면 성경이 증거하는 구원자를 믿어야 합니다.

안상홍님을 믿는 하나님의교회로 오셔서 영원한 생명의 축복도 받으시기 바랍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이사야 25장 6~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