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31일 일요일

농촌 일손 돕기에 나선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의 사랑 나눔, 행복 둘

세종지역 하나님의교회 성도 40여명이 27일 세종시에서 과수농가 일손 돕기를 벌였네요^^
 
일손 부족에 힘들어하던 과수 농가를 찾아 복숭아 적과(솎아내기)작업을 도왔는데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참석자들은 밝은 미소 속에 봉사활동에 임하며 구슬땀을 흘렸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농번기에 인건비 상승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농가에 작으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램으로 선한 마음과 아름다운 미소를 보태어 영농철을 맞아 매년 지역 곳곳에서 농촌봉사활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영농 농가 여러분 힘내세요... 
여러분이 계셔서 우리의 식탁이 항상 건강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http://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28347
 
"굿모닝 충청"


2015년 5월 28일 목요일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힘..


미국의 명문 대학인 존스홉킨스 대학교 재활의학과 수석전문의 이승복,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로 동계올림픽에서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이승훈이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불가능하다' 였습니다.
 


미국으로 온 가족이 이민을 간 후 외로움과 편견을 딛고 기계 체조의 유망주로 성장했던 이승복은 연습도중 추락 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발견합니다. 재활의학 전문의가 되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환자들을 돕고 싶다는 그의 희망은 말그대로 희망일 뿐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수만번의 노력과 수천번의 재활운동으로 손과 팔을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많은 어려움 속에서 결국 의사로서 당당히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됩니다.
 
 
이승훈은 쇼트트랙 국가대표에서 탈락 후 모든걸 놓을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7개월 만에 스피드스케이팅이라는 새로운 종목에서 대표로 선발되게 됩니다. 그리고 기절하기 직전까지 연습의 끈을 놓지 않은 결과 키가 작고 체력이 부족한 아시아인은 절대로 장거리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절대로 유럽 선수와 경쟁할 수 없다는 편견을 깨고 당당히 금메달을 획득하게 됩니다.
 
 
  
불가능은 누구나 당하는 일이고 누구나 쉽게 말하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길은 결국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의지와 인내에 달려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아직 실패한게 아닙니다.. 
힘드세요..그래도 끝까지 도전해 보세요...
 
영상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L57q39yFjKU

2015년 5월 23일 토요일

진실과 정의의 힘은 폭력보다 강하다 - 간디의 위대한 이야기

간디는 현대의 지성으로 수없이 많은 찬사와 존경을 받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간디의 확신과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수많은 일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많은 감동과 깨달음을 주고 있습니다.
 
진실을 믿고, 정의를 따르며 실천을 통해 모두의 행복을 소망했던 간디...
 
오늘... 간디의 위대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삶을 생각해 봅니다.


영상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YWPo_pqqwcs 

2015년 5월 19일 화요일

길고 짧음의 차이 - 탈무드의 지혜

어느 날 스승이 제자들을 모아놓고 벽에 선을 하나 그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했다.
잘들어라, 내가 이 벽에 그어 놓은 선을 그대들이 짧게 만들어 보아라. , 절대로 선에 손을 대어서는 안된다.”

제자들은 모두 어리둥절해 했다. 선을 조금 지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스승은 제자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살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대들 가운데 이 선을 짧게 만들 사람이 하나도 없단 말인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로고!”

그 때 한 제자가 앞에 나서더니 스승이 그어 놓은 선 바로 밑에 선을 하나 더 그었다.
스승이 그은 것보다 더 길게...

스승은 기뻐하며 제자들에게 말했다.
그대들은 명심하라.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기란 아주 어렵다. 내 마음을 먼저 움직여야 상대의 마음을 변화 시킬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을 가르칠 때에도 마찬가지다. 나의 변화없이 상대를 가르치려하는 것은 신뢰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탈무드의 지혜

살면서 우리는 내 말과 내 생각을 앞세워 상대방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려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설득의 방법은 내가 먼저 바뀌고, 내가 먼저 낮아질 때 가능하다는걸 이 예화가 보여주고 있는거 같습니다.

제 스스로를 되돌아 볼 수 있었던 좋은 영상이라 공유해 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2:1~4)
 

 영상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1tYDFN9f91g

2015년 5월 15일 금요일

네 명의 아내와 함께 하는 길 - 탈무드의 지혜


네 명의 아내를 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첫째 아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나깨나 늘 곁에 두고 살아갑니다.

둘째는 아주 힘겹게 얻은 아내입니다. 사람들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쟁취한 아내이니만큼 사랑 또한 극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둘째 아내는 든든하기 그지없는 성(城)과도 같습니다.

셋째와 그는 특히 마음이 잘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며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넷째에게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녀는 늘 하녀 취급을 받았으며, 온갖 굳은 일을 도맡아 했지만 내색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그의 뜻에 순종하기만 합니다.

어느 날, 그가 머나먼 나라로 떠나게 되어 첫째 아내에게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첫째 아내는 냉정히 거절합니다. 그는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둘째 아내에게 같이 가자도 했지만 둘째 역시 거절합니다. 첫째도 안 따라 가는데 자기가 왜 가느냐는 것입니다.

실망이 깊어진 그는 셋째 아내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셋째는 말합니다.
성문 밖까지 배웅해 줄 수는 있지만 같이 갈 수 없습니다라고...

낙담한 그는 마지막으로 넷째 부인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넷째는 말합니다. ‘당신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넷째 부인만을 데리고 머나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 이야기의 머나먼 나라는 죽음의 길을 말합니다.

그리고 아내들은 살면서 아내처럼 버릴 수 없는 네 가지를 비유하는 것입니다.

첫째 아내는 육체를 비유합니다.육체가 곧 나라고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지만 죽게 되면 우리는 이 육신을 데리고 갈 수 없습니다.

사람들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얻은 둘째 아내는 재물을 의미합니다.
든든하기가 성(城)과 같았던 재물도 우리와 함께 가지 못합니다.

셋째 아내는 가족과 친구들입니다. 마음이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던 이들도 문 밖까지는 따라와 주지만 끝까지 함께 가 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넷째 아내는 바로 마음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은 마음 상하는 일은 상관 않고 육신의 즐거움을 따라 살며 별 관심도 없이 힘들고 아픈 일만 도맡아 하게 했지만 죽을 때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나서는 것은 마음뿐입니다.
차갑고 습한 땅 속 밑이든, 하늘의 영화나 지옥의 끓는 불 속이든 마음이 앞장서서 나를 데리고 갈 것입니다.
 
살아 있을 때, 내 마음이 선한 양심의 빛을 외면하고 어두움에 빠져 허무하고 헛된 것으로인생을 허비하고, 음란하고 악한 길만을 찾아 걸었다면 그 마음은, 죽음 후의 내 영혼을 어둡고 고통스러운 길로 데리고 갈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살아있을 때 내 마음이 항상 선한 양심의 빛을 따라 선한 생각을 하고, 선한 말만 하며, 좋은 일만 하기에 힘썼다면 그 마음은 죽음 후의 내 영혼을 환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아내를 더 사랑하고 계신가요
그 사랑이 나의 삶과 또 다른 나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걸 잊지 마세요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2:5~10)


2015년 5월 11일 월요일

언론플레이로 거짓과 증오를 선동하는 헤이트스피치 단체 '하피모'

얼마 전, 대한민국 최초로 라면을 만든 삼양식품 창업주 전중윤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전 회장은 한국 라면의 아버지, 라면업계의 대부라 불릴 만큼 라면시장의 새 역사를 쓴 인물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의 우리나라는 배고픔이 가장 큰 시련이었다. 전 회장은 1960년대 초, 서울 남대문시장에 갔다가 미군부대에서 버린 음식물쓰레기를 한데 모아 끓인 5원짜리 꿀꿀이죽을 먹으려고 길게 줄을 지어 서 있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그는 일본 여행길에서 싼 값에 라면을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고 배고픈 서민들을 위해 라면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길로 그는 멀쩡한 직장에 사표를 내고 회사를 차렸다. 일본의 라면회사인 묘조식품을 찾아가 우여곡절 끝에 라면제조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19639, 대한민국 최초의 라면이 출시되었다. 라면 값은 단돈 10원이었다. 시설비와 원료비 등의 부담이 커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회사 임원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배고픈 서민들의 배를 채우는 것, 그것이 그가 라면을 만든 이유였기 때문이다.
 
라면은 처음에는 (綿)’으로 만든 섬유제품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얼마 후부터 식량난 해결에 큰 몫을 차지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전 회장의 회사를 방문해 한국인의 입맛을 고려해 고춧가루를 넣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이 있었고, 당시 정부가 혼분식 장려운동을 전개하면서 라면은 국민음식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전 회장의 바람대로 라면이 온 나라를 먹여 살리는 애국상품이 된 것이다.
 
그러던 1989년 삼양식품은 뜻밖의 누명을 쓰게 됐다. “라면을 미국에서 수입한 공업용 우지(소기름)로 만든다는 투서가 검찰에 들어간 것이다. 밀고자가 누구인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정부는 유해 여부를 철저히 가려 엄벌하라고 요구했고, 검찰은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몇몇 소기름을 쓰는 기업들이 검찰에 불려갔다. 이른바 우지(牛脂) 파동이다. 사람들은 삼양식품을 비롯한 이 기업들을 손가락질했다. 이 기업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당시 라면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던 삼양식품은 10%대로 곤두박질쳤다.
 
진실은 오랫동안 감춰져 있었다. 대법원이 우지가 인체에 무해하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한 건 8년 후인 1997년이었다. 애초에 공업용우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소의 기름, , 내장은 먹지 않기 때문에 식용이 아닌 공업용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소기름은 엄연히 식용인 것이다.
 
진실은 밝혀졌고 누명은 벗었지만 이미 악덕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힌 뒤였고, 사람들은 등을 돌린 채였다. 우지 파동 이후, 전 회장의 회사는 매출이 급감하면서 심각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1000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고, 경쟁업체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누군가의 거짓말 한마디에 국내 최고의 우량기업이 악덕기업으로 추락한 것이다.
 
우지 파동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단면을 보여주는 일례로, 거짓은 사람들의 눈을 너무 쉽게 가린다는 씁쓸한 교훈을 심어준다. 배를 곯은 서민들을 위해 애쓴 기업인의 참담한 이야기는 거짓말 때문에 크나큰 상처를 입고 있는 하나님의교회 성도로서 퍽 애처롭고 유감스럽다.
 
하나님의교회는 수많은 거짓말들로 치욕스러운 누명을 쓰고 있다. 시한부종말론을 외치고, 가출과 이혼을 조장하여 가정을 파탄내고, 재산을 갈취하고, 아동을 학대하는 교회라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땅에 절대로 존재해서는 안 될 반인륜적이고 반사회적인 교회다.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동원해 거짓 정보 제공자들의 표현대로 발본색원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러한 거짓말과 루머는 해묵고 고질적인 것들이다. 일찍이 십수 년 전, 하나님의교회를 음해하는 자들이 방송사에 거짓 정보를 흘려 허위 방송을 내보낸 바 있다. 이후 방송사들은 하나님의교회에 사과하고 당시의 방송분을 모두 공급 및 판매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대법원은 하나님의교회가 시한부종말론으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거나 가정을 파탄내는 교회라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은 거짓 정보 제공자들이 이 일을 알고 있을 텐데도, 전단지까지 만들어 하나님의교회가 사이비 종교라는 사실을 TV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며 유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들의 거짓말에 속아 진실은 보지 못한 채, 아니 보려고 하지 않은 채 눈을 감아버린다. 우지 파동의 그 어리석고 부당한 처사와 전혀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런 졸렬하고 비겁한 언론플레이로 수많은 가정과 가족간의 신뢰를 깨뜨린 자들이 바로 '하피모'. 하피모는 거짓과 선동을 일삼아 행복한 가족 사이에 불신과 불안을 조성하고 이혼과 가출을 유발시키는 사회악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자들의 거짓말과 비방에 미혹된 사람들 중 대부분은 이들의 졸렬한 범죄 실체를 알고 되돌아 서지만 일부 사람들은 끝내 그들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가정폭력과 명예훼손의 도구로 전락되는 안타까움을 보이고 있다.
 
과거 우지 파동을 통해 우리는 이런 경험을 한 바 있다. 소기름은 일찍이 먹어왔던 것이고 먹을 수 있는 건데도, 거짓말을 들은 후 돌연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 돼버렸다. 사람들은 소문과 세간을 떠도는 정보에 너무 쉽게 홀린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따져보려는 사람은 드물다. 이것이 가슴 아픈 현실이다. 결국 거짓에 미혹된 사람도 문제지만 그 거짓을 유포하고 정당화 시켜 막대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입힌 그런 자들이 더 큰 문제고 그래서 반드시 처벌 받아야 한다.
 
하지만 '하피모'와 같은 졸렬하고 비겁한 자들의 훼방이 있다하더라도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
 
하나님의교회는 초대교회의 진리와 신앙을 회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하나님을 진실히 믿는 세계인들을 감동시켰고,현재 175개국 2500여 곳에 하나님의교회가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은 초대교회 사도 바울의 표현대로 사람이신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 성경의 예언대로 두 번째 성육신하신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님과 새 예루살렘의 실체이신 어머니 하나님을 신앙하고 있다. 그리고 안상홍님과 어머니 하나님의 가르침이자 성경의 가르침대로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선한 행실을 갖고자 노력하고 있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2:12)
 
- 출처: 패스티브닷컴
 

2015년 5월 8일 금요일

세상을 이기는 의지를 선물한 아버지



애지중지 키워 온 딸을 고르고 골라 시집 보냈던 아버지는 그 딸을 위해 뒤돌아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딸도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에 힘들고 어려운 살림을 아버지께 기대지 않았습니다.

장사를 하는 사위가 비를 피해 잠시 장인의 집에 머물려고 할 때도 장인은 문조차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정말로 딸과 사위를 미워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사위와 딸에게 세상을 살면서 닥칠지 모를 고난과 고통을 이길 수 있는 의지와 힘을 키워주기 위해 남보다 더한 마음앓이를 앓게 했던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영상출처:KBS TV동화 행복한 세상 '세상을 이기는 힘' 





2015년 5월 6일 수요일

광주에서 불어오는 5월의 한 맺힌 남풍

우리 근대사에서 가장 아프고 슬픈 역사를 꼽는다면 일제에 의한 국권찬탈과 이념과 사상으로 갈라져 남,북의 이웃이 적으로 맞섰던 6.25전쟁을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픔과 슬픔에 부끄러움이 가득했던 역사로 기록된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으로 피해 당사자와 유족들의 가슴과 남아있는 우리의 가슴을 아프도록 저미게 만들고 있습니다. 

1980년518~27일 동안 벌어졌던 광주 민주화운동은 정치군인들에 의한 조작된 상황과 그 상황을 아무 생각없이 쫓아간 군인들과 일반 국민들의 합작품이었습니다. 
 
 
1980년 5월...광주 시민들은 영문도 모른채 폭도로 간주 되어버렸고, 군인들은 정치 군인에 속아 평범한 시민을 적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부끄러운 일은 대다수의 국민들은 알면서도 속고, 알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학살의 당사자인 정치 군인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어처구니 없는 행동도 마다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밝혀진 지금도, 거짓과 세뇌의 골은 깊이 남아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음모론과 조작설이 독버섯 처럼 여론을  헤치고 등장해 남아있는 당사자들의 가슴을 후비고 있습니다.
 
그래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비극의 역사입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사망자는 총 606, 이 가운데 165명은 항쟁 당시 숨졌고, 행방불명이 65, 부상 후 사망 추정자는 376명 등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중 30명은 만 18세 이하였습니다.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하고, 그래서 더욱 잊어서는 안될 80년의 5월의 잔인한 추억이 또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5월의 바람은 시원하지만 마음은 항상 뜨겁습니다.
 
역사를 통해 배우고, 역사를 통해 기억해야할 우리의 부끄럽고 아픈 기억을 후대에 또다시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 오늘...그 날을 기록하고 되뇌입니다.
 

 
영상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8mGDBe8H4p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