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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30일 목요일

비드온 슈바임


사람들이 배를 타고 긴 항해를 하고 있었다. 
그 배에는 로마 사람, 희랍인, 페니키아 사람을 비롯한 여러 나라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유대인도 있었다.
배는 아무 일 없이 항해를 하다가 갑자기 해적의 습격을 받았다.
배에 탔던 사람들은 모두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다.
노예로 전락한 사람들은 시장으로 끌려 나가 한 사람씩 값이 매겨져 일꾼으로 팔려갔다.
맨 먼저 크고 힘센 로마 청년이 작업장 일꾼으로 팔려갔다.
그 다음 아름다운 희랍 여인이 어떤 사람에게 팔려갔다.
드디어 유대인 차례가 되었다.
노예 상인은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사람은 유대인입니다. 몸도 좋고 일도 잘합니다."
그러자 사람들 중 얼른 금 몇 개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사람이 거기에 값을 더 얹어 불렀다.
처음의 사람은 그보다 더 비싸게 값을 불렀다.
또 다른 사람이 그 위에 더 많은 돈을 얹어 몸값을 불렀다.
이렇게 몇 차례 몸값이 엎치락뒤치락한 끝에 유대인은 가장 먼저 몸값을 불렀던 사람에게 팔리게 되었다. 그 배에 탄 사람들 중 가장 비싼 값이었다.
유대인 노예를 산 그 사람은 노예를 데리고 시장을 떠났다.
그런데 얼마쯤 가다가 유대인 노예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유대인 노예를 산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유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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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드온 슈바임(Pidyon Shevuyim)’이란 히브리어로 ‘사로잡힌 자를 사온다’는 의미다. ‘유대인은 붙잡힌 동족을 반드시 해방시켜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즉, A라는 유대인이 노예가 되면 이를 보거나 알고 있는 유대인은 반드시 A의 몸값을 치르고 그를 구출해내야 한다.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누가복음 15:4~7)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롬2:28~29)




-출처: 패스티브닷컴


2015년 7월 28일 화요일

위대한 생명의 설계자는 누구일까?



다음 질문에 대해 당신은 어떤 답을 하겠는가?

첫째, 63빌딩의 설계도가 있을까?
둘째, 63빌딩의 설계도가 있다면 설계자가 있을까?
셋째, 설계도를 보면 설계자의 능력을 알 수 있을까?
넷째, 건물에 설계도가 있는 것처럼 생명체에게도 설계도가 있을까?


기계나 장치를 만들 때 사용 목적에 맞는 기구, 구조, 치수, 재료 등을 결정하고, 이에 따라 그 개요를 그린 도면을 설계도라고 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물, 가구, 자동차, 휴대폰 등 모든 사물들은 각자의 필요에 따라 설계되었다. 그리고 설계도가 있다는 것은 반드시 설계자(Designer)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 설계도를 보면 설계자의 지적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단순한 개집을 짓는 것과 복잡한 최첨단 빌딩을 짓는 것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부품의 갯수는 대략 2만 개 정도라고 한다. 그 2만 개의 부품이 설계도대로 완벽하게 결합되어 조여지고 각자의 자리에 위치했을 때 자동차는 시동이 걸리고 거리를 질주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중 단 하나라도 빠지거나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자동차는 결함이 생기고 달릴 수 없는 고철덩이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러한 복잡하면서도 체계적인 원리 속에서 발명품을 만들어낸 과학자들을 위대하다고 평가한다.

만일 누군가가 “자동차는 저절로 생긴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 말을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2만 개의 부품이 공중에 흩어졌다가 각기 그 위치에 저절로 떨어져 알아서 조립되었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볼까? 사실 그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사물을, 그것이 크든 작든 저절로 생겨난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처럼 호흡이 없는 무생물의 경우에도 설계도가 있고 설계자가 있는데, 하물며 살아 있는 생명체는 어떠할까. 놀랍게도 생명체에도 설계도가 있다는 사실이 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과학자들에게 따르면, 사람은 약 50~6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각각의 세포에는 염색체가 있고, 그 염색체 안에는 DNA라는 유전물질을 갖고 있다. DNA는 아데닌(Adenine), 구아닌(Guanine), 사이토신(Cytosine), 타이민(Thymine) 4종의 염기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 이니셜을 따서 A, G, C, T로 표시한다. 이들은 DNA의 이중나선 구조에서 A와 T, 그리고 G와 C가 서로 짝을 이루며 A는 T와, 그리고 G는 C와 반드시 마주 보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들의 조합에 의해 서로 다른 아미노산이 형성되고 이 아미노산들이 모여 하나의 세포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세포가 50~60조 개가 모여 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A와 T, 그리고 G와 C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세포 하나의 설계의 정보량은 A4 용지 1백만 페이지에 해당하며 이는 백과사전 1000권의 분량에 해당한다고 한다. 실로 엄청난 정보량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엄청난 정보량을 담은 세포 하나하나가 모여 50조 개 이상을 이루어야만 살아있는 사람이 되는 것인데, 그중에 단 하나만 잘못되어도 제대로 발육하지 못하고 몸에 이상이 생기게 된다. 그야말로 가장 복잡하고 섬세하고 완벽한 설계도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사람이다.

한 과학잡지에 의하면, 인류가 현재 전 세계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정보데이터의 양이 295엑사바이트에 해당한다. 참고로, 1엑사바이트는 10억 기가바이트와 같은 양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인간의 DNA가 가진 저장능력에 비하면 이 엄청난 양은 비교가 안 된다. 295엑사바이트의 정보량은 DNA의 저장능력의 100분의 1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우리의 ‘몸’ 설계도는 인류가 측량하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규모다.

모든 생명체에는 각각의 설계도가 있고 그 설계도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견해다. 곧 우리 몸 하나하나의 세포를 들여다보면 나를 존재케 한 설계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체가 존재하는 데 있어 설계도가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이는 생명을 설계한 설계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가장 복잡하고 정밀한 설계도를 설계하셨다는 것은 설계자의 능력이 가히 측량할 수 없는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그분을 우리 영혼의 창조자,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히브리서 3:4)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이사야 40:26)

지금, 내가 태어나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은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의 나를 있도록 설계하신 설계자,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 그 누구도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과정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친히 성경의 기록을 통해 당신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하나님을 찾아가도록 권고하고 계신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을 찾아야 하고 우리를 만드신 창조자를 만나야 한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로마서 1:20)

<참고자료>
1. ‘인류가 축적한 정보량과 인간 DNA 비교하니’, 지디넷코리아, 2011. 2. 12.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10211172659&type=det
2. ‘DNA의 분자구조’, 두산백과
3. ‘지적설계’, 위키백과
내용출처: 패스티브닷컴

2015년 6월 19일 금요일

상어를 통해 배우는 믿음의 길 2

상어는 늘 사나운 입을 벌리고 다닙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짓이지만 그로말미암아 
다른 이의 간담을 늘 서늘하게 만듭니다.

우리도 이런 상어의 모습을 닮아 사람들을 두려워해서 
입술을 다물고 뒤로 물러서는 믿음이 아니라 

내 영혼이 살기 위해 늘 담대히 복음을 외치고 전해서 
악한 자들 손에서 많은 영혼을 구하고 

악한 자들로 하여금 우리와 함께하시는 
엘로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아버지,어머니 앞에 
무릎 꿇게 만들어야 합니다.

상어는 언제가는 죽습니다.
그리고 자기보다 더 강한 자 앞에서 사라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버지,어머니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약속 받았습니다. 
그래서 쉼 없는 믿음의 길 끝에는 사망이 아닌
영원한 천국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의 이 길이 힘들고 어렵다 하더라도 
쉼 없는 우리의 노력이  결국 믿음의 목적을 
이룰 수 있게 해준다는걸 잊지마세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41:10)



2015년 6월 17일 수요일

상어를 통해 배우는 믿음의 길


 

물속에 사는 어류들은 가스양을 조절하는 공기주머니, 부레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물과 몸속의 비중을 일치시키는, 완벽한 자동시스템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레는 어류가 상하로 이동할 때에도 쓰이며 어류의 청각, 평형감각 등도 담당합니다. 어류들이 굳이 지느러미를 움직이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수심에 머무를 수 있는 이유도 부레 덕분입니다.


그런데 상어는 어류면서도 부레가 없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부레를 가지지 못한 상어는 과연 어떻게 가라앉지 않을까요. 또한 어류로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상어가 어떻게 바다동물의 가장 강력한 포식자의 지위를 가질 수 있었을까요.


상어는 쉴 새 없이 지느러미를 움직입니다. 

이유는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부레 없이 태어난 상어는 잠시도 쉬지 않고 평생 헤엄을 쳐야 하는데, 몸의 구조도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부레로 헤엄치는 경골어류와 달리 상어의 뼈는 물렁뼈(연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게다가 내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간은 지방간으로 상어에게 약간의 부력을 줍니다. 해서 상어는 쉬지 않고 헤엄치며 죽을 때까지 깊은 휴식을 취할 수 없습니다.


상어를 포식자로 보이게 하는 주된 원인은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다니기 때문입니다. 상어가 입을 벌린 채 헤엄을 치는 이유는 아가미에 운동기능이 없어서입니다.



대부분 어류가 아가미를 통해 물속의 산소를 빨아들입니다. 하지만 아가미에 운동기능이 없는 상어는 입을 벌린 채 계속 움직여야 물이 아가미로 들어갑니다. 이 같은 상어의 모습에 피식자들은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수중생태계의 대명사로 불리는 상어를 보며 우리도 신앙생활에 있어 쉴 새 없는 믿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살기 위해 몸짓을 멈출 수 없는 상어처럼 우리도 천국으로 향하는 몸짓을 멈추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으면 관두는 내 마음대로의 신앙은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믿음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쉼 없는 그 길 끝에는 영원한 천국이 기다리고 있기에 비록 지금의 이 길이 힘들고 어렵다 하더라도 쉼 없는 우리의 몸짓이 결국은 믿음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 참고자료 >
 1. ‘상어’, 네이버캐스트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4&contents_id=43337


 2. ‘부레’,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03720&cid=40942&categoryId=32319


출처: 패스티브닷컴

2015년 6월 12일 금요일

보배로운 하나님의 축복의 날 '새언약 안식일'

아무리 귀하고 아름다운 보석이라도 원석(原石)이었을 때는 돌덩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만일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갖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며, 혹 갖게 되더라도 아무 데나 방치해 두었다가 누군가 달라고 하면 선뜻 내주기 쉽다. 무엇이든 가치를 알지 못하면 경홀히 여길 수밖에 없고, 결국 잃어버리게 되어 있다. 오직 가치를 아는 자만이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키라 하신 일곱째 날 안식일도 이와 같다. 안식일은 단지 ‘예배를 드리는 날’이 아니라 우리 영혼에 있어 보배로운 날이다.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과 숭고한 은혜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보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안식일의 참된 가치를 깨달아야만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다.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 (이사야 56:2)

그렇다면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어떤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일까. 이는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 안식하신 일과 ‘안식(安息)’이라는 단어를 통해 깨달을 수 있다. 말 그대로,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은 안식을 누리는 축복을 받게 된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 쉬시며 그날을 복을 주고 거룩하게 하셨다. 이 말은 일곱째 날 자체가 복을 받고 거룩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날을 지키는 백성들이 복을 받는다는 의미다.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 (에스겔 20:12)

또한 하나님의 창조사업에 대해 기술할 때,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반복적으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몇째 날이니라” 하는 표현이 있다. 그런데 일곱째 날에는 더 이상 이 표현을 쓰지 않았다. 그 이유는 6일 창조에 대한 예언이 6천년 구속사업에 대한 예언으로, 7일째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것처럼 7천 년째부터는 더 이상 시간의 끝이 없는, 영원한 안식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안식일에 대한 예언은 아직 다 성취되지 않았다.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베드로후서 3:8)”는 말씀과 같이 6일 창조의 역사는 6천 년간 이루시는 영적 창조, 즉 구원의 역사를 예표한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것은 7천 년째 당하는 안식 천년의 예언으로써, 구원받은 자녀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왕 노릇하며 완전하게 성취될 것이다(요한계시록 20:4~6, 22:5).

사람은 누구나 힘들고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 편안히 쉬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 바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뿐더러 이 땅에서는 아무리 편히 쉰다고 해도 실상 쉬는 것이 아니다. 좋은 것, 편안한 것도 잠시간일 뿐 그조차도 여전히 힘이 들기 때문이다(전도서 1:8, 2:22).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안식은 다르다. 사망도, 눈물도, 애통함도, 고통도, 아픔도 없는 천국에서 영원히 누리게 되는 그야말로 ‘완전한 안식’이기 때문이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 21:4)

이처럼 안식일은 엄청난 축복이 약속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녀들에게만 이 모든 은혜를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약속은 아직도 효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무도 그곳에 들어갈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우리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기쁜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은 말씀이 자기들에게 유익이 되지 못했던 것은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면 그 안식처에 들어갈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먼저 기쁜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불순종했기 때문에 그곳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사람은 하나님이 일을 마치고 쉬신 것처럼 자기 일을 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순종하다가 멸망한 사람들처럼 되지 말고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히브리서 4:1~11, 현대인의성경)

구약시대 하나님께 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신약시대 하나님께 순종하는 백성들에게는 천국으로 인도하셔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도록 축복해주신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이 안식일을 세상 끝 날까지 지키라고 당부하셨던 것이다(마태복음 24:20).

하나님의 뜻이 모두 이루어질 때, 안식일의 가치를 깨달아 굳이 잡고 있었던 인생들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안식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매주 일곱째 날마다 이 보배를 우리에게 값없이 나누어주고 계신다.

- 출처: 패스티브닷컴


2015년 5월 19일 화요일

길고 짧음의 차이 - 탈무드의 지혜

어느 날 스승이 제자들을 모아놓고 벽에 선을 하나 그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했다.
잘들어라, 내가 이 벽에 그어 놓은 선을 그대들이 짧게 만들어 보아라. , 절대로 선에 손을 대어서는 안된다.”

제자들은 모두 어리둥절해 했다. 선을 조금 지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스승은 제자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살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대들 가운데 이 선을 짧게 만들 사람이 하나도 없단 말인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로고!”

그 때 한 제자가 앞에 나서더니 스승이 그어 놓은 선 바로 밑에 선을 하나 더 그었다.
스승이 그은 것보다 더 길게...

스승은 기뻐하며 제자들에게 말했다.
그대들은 명심하라.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기란 아주 어렵다. 내 마음을 먼저 움직여야 상대의 마음을 변화 시킬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을 가르칠 때에도 마찬가지다. 나의 변화없이 상대를 가르치려하는 것은 신뢰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탈무드의 지혜

살면서 우리는 내 말과 내 생각을 앞세워 상대방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려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설득의 방법은 내가 먼저 바뀌고, 내가 먼저 낮아질 때 가능하다는걸 이 예화가 보여주고 있는거 같습니다.

제 스스로를 되돌아 볼 수 있었던 좋은 영상이라 공유해 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2:1~4)
 

 영상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1tYDFN9f91g

2015년 5월 15일 금요일

네 명의 아내와 함께 하는 길 - 탈무드의 지혜


네 명의 아내를 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첫째 아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나깨나 늘 곁에 두고 살아갑니다.

둘째는 아주 힘겹게 얻은 아내입니다. 사람들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쟁취한 아내이니만큼 사랑 또한 극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둘째 아내는 든든하기 그지없는 성(城)과도 같습니다.

셋째와 그는 특히 마음이 잘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며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넷째에게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녀는 늘 하녀 취급을 받았으며, 온갖 굳은 일을 도맡아 했지만 내색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그의 뜻에 순종하기만 합니다.

어느 날, 그가 머나먼 나라로 떠나게 되어 첫째 아내에게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첫째 아내는 냉정히 거절합니다. 그는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둘째 아내에게 같이 가자도 했지만 둘째 역시 거절합니다. 첫째도 안 따라 가는데 자기가 왜 가느냐는 것입니다.

실망이 깊어진 그는 셋째 아내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셋째는 말합니다.
성문 밖까지 배웅해 줄 수는 있지만 같이 갈 수 없습니다라고...

낙담한 그는 마지막으로 넷째 부인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넷째는 말합니다. ‘당신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넷째 부인만을 데리고 머나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 이야기의 머나먼 나라는 죽음의 길을 말합니다.

그리고 아내들은 살면서 아내처럼 버릴 수 없는 네 가지를 비유하는 것입니다.

첫째 아내는 육체를 비유합니다.육체가 곧 나라고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지만 죽게 되면 우리는 이 육신을 데리고 갈 수 없습니다.

사람들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얻은 둘째 아내는 재물을 의미합니다.
든든하기가 성(城)과 같았던 재물도 우리와 함께 가지 못합니다.

셋째 아내는 가족과 친구들입니다. 마음이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던 이들도 문 밖까지는 따라와 주지만 끝까지 함께 가 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넷째 아내는 바로 마음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은 마음 상하는 일은 상관 않고 육신의 즐거움을 따라 살며 별 관심도 없이 힘들고 아픈 일만 도맡아 하게 했지만 죽을 때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나서는 것은 마음뿐입니다.
차갑고 습한 땅 속 밑이든, 하늘의 영화나 지옥의 끓는 불 속이든 마음이 앞장서서 나를 데리고 갈 것입니다.
 
살아 있을 때, 내 마음이 선한 양심의 빛을 외면하고 어두움에 빠져 허무하고 헛된 것으로인생을 허비하고, 음란하고 악한 길만을 찾아 걸었다면 그 마음은, 죽음 후의 내 영혼을 어둡고 고통스러운 길로 데리고 갈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살아있을 때 내 마음이 항상 선한 양심의 빛을 따라 선한 생각을 하고, 선한 말만 하며, 좋은 일만 하기에 힘썼다면 그 마음은 죽음 후의 내 영혼을 환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아내를 더 사랑하고 계신가요
그 사랑이 나의 삶과 또 다른 나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걸 잊지 마세요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2:5~10)


2015년 4월 21일 화요일

하늘의 축복을 받은 영적 ‘무수옹(無愁翁) 이 되는 길...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2015년을 맞이했을 겁니다. 매일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하지만 힘들고 걱정스러운 일이 더 많아 보이는 것이 우리네 삶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옛이야기 중에는 복을 타고나서 걱정을 모르는 노인이 있습니다
이른바 무수옹(無愁翁) 설화입니다.
 
무수옹은 열세 자녀를 두었습니다. 자식들 모두가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여 서로 모시려 하자, 무수옹은 한 달씩 돌아가면서 아들의 집에서 살고 윤달에는 딸의 집에서 지냈습니다. 어느 집에 가든지 행복한 웃음이 넘쳐났으니 과연 걱정이 없는 노인이었습니다. 이 소문을 전해들은 임금은 노인을 시험해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노인을 불러 진귀한 구슬을 주면서 언제든지 가져오라 하면 가져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임금에게서 귀한 구슬을 받은 노인은 기쁜 마음으로 강을 건너는데 뱃사공이 구슬을 구경하다가 그만 강물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실은 임금이 일부러 그러도록 시킨 것인데, 노인의 복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던거죠..
 
아주 난처한 상황에 빠진 노인은 이 같은 사실을 자식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자식들은 아버지를 위로하며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했는데 그때 며느리가 근심에 젖은 시아버지를 봉양하려고 저녁을 지으려고 생선 몇 마리를 사와 배를 갈랐는데 한 생선의 뱃속에서 구슬이 나왔습니다. 다름 아닌 노인이 임금에게서 받은 구슬이었습니다. 노인은 구슬을 들고 궁궐로 들어가 그간 구슬에 얽힌 이야기를 임금에게 전했습니다. 노인의 이야기를 들은 임금은 무릎을 탁 치며 하늘이 내린 복은 어쩔 수 없다며 감탄했다고 합니다.
 
과연 엄청난 복을 타고난 노인입니다. 누가 며느리가 사온 물고기에서 구슬이 나올 줄 알았을까요.. 세상에는 천복을 타고난 자들이 있다고 하는데, 무수옹이 꼭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무수옹만큼이나 하늘의 복을 타고난 자들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 성경 인물 중 하나가 베드로 입니다. 그도 무수옹의 며느리와 같은 지극한 봉양으로 예수님을 섬겼고 그리스도를 향한 악한 자들의 훼방을 물리친 기록이 있습니다.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중략)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17:24~27)
 
이처럼 늘 넘치는 하늘의 축복을 받아 하나님을 섬기고 믿음을 더했던 성경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있는데요..그들의 축복이 얼마 만큼 이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신명기 28:6~8)
 
이들도 대단한 복을 타고난 자들입니다. 나가는 곳마다 복을 받고 들어가는 곳마다 복을 받으니 필연코 삶 자체가 축복으로 넘친다는 뜻입니다. 무수옹처럼 말이죠. 하지만 그 복이 저절로 생겨난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그들을 복된 존재로 만든 비밀은 무엇일까요?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명기 10:13)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신명기 28:1~6)
 
복의 비결은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규례는 인생으로 하여금 축복과 행복을 받게 하는 열쇠가 분명합니다. 인생들은 규례를 지킴으로 하나님께 복을 받고 덤으로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갈 희망과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거룩함과 축복을 함께 받을 수 있는 규례를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바로 '새언약 안식일'입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세기 2:3)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12:8)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안식일 규례를 지키는 교회부터 찾아야 합니다. 진리는 가까운 곳에 있다는 말처럼 하나님의 안식일 규례를 지키는 진리교회도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곳을 찾아 무수옹보다도 더 복을 타고난 주인공이 되는 것은 어떨까요?
 
- 인용: 패스티브닷컴




2015년 3월 8일 일요일

한 사람의 발자국


한 노인이 하나님과 함께 해변을 거닐었습니다.

해변에는 그가 지나온 인생의 여정을 따라 두 명의 발자국이 나란히 찍혀 있었습니다.

하나는 노인의 발자국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와 동행하신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발자국을 유심히 바라보던 그는 생애 가장 큰 시련이 닥쳤던 시기에 하나의 발자국만 찍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노인은 하나님께 불평을 터뜨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평탄한 길을 갈 때에는 저와 동행하시다가 힘든 시련이 올 때는 왜 함께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힘들 때 더 도와주시고 함께해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버린 적이 없다. 항상 너와 동행하였다. 아무런 위험이 없는 평탄한 길에서는 너와 나란히 걸었지만, 위험이 닥쳐오면 너를 업고 모든 시련과 맞서 싸우며 걸었다. 시련과 고난의 때에 남겨진 그 발자국은 너의 것이 아니라 너를 업고 걸어간 나의 발자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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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이사야 43장 1~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