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유럽에서는 토마토를 먹지 않고 관상용으로만 즐겼습니다.
겉모습이 독초인 멘드레이크와 닮았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외양이 사람과 유사한 멘드레이크는 별명이 '사탄의 사과'라 불리웠는데
실제로 멘드레이크는 아트로핀, 스코폴라민 등 환간 성분이 들어 있어 섭취하며 마취,환각에 빠질 수 있다고 합니다.
유럽인들은 그래서 19세기 들어 와서야 토마토를 먹기 시작했고,
그것도 몇 시간의 조리를 거쳐 해독이 됐다고 생각한 토마토만 섭취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토마토가 오늘 날 익히지 않은채 자유롭게 먹게 된 중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백악관 만찬장에서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이 자신의 정원에서 키운
싱싱한 토마토를 만찬장 테이블에 올린 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주 맛있게(?) 먹고
토마토에 대한 낭설과 편견을 불식 시킨 후 부터였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그것이 반드시 진실일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다분히 주관적이고 집단적 사고에 머물러 있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편견이 거짓으로 드러나기 까지 너무 많은 시간과 헛된 수고가 동반되게 됩니다.
사람들의 생각에 진실을 부여하지 말고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진실을 정확히 바라보고자
했던 토마스 제퍼슨과 같은 용기와 노력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거 같습니다.
내용인용: http://blog.daum.net/nhicblog/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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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8nm65SDnLbs
2015년 6월 11일 목요일
2015년 5월 6일 수요일
광주에서 불어오는 5월의 한 맺힌 남풍
우리 근대사에서 가장 아프고 슬픈 역사를 꼽는다면 일제에 의한 국권찬탈과 이념과 사상으로 갈라져 남,북의 이웃이 적으로 맞섰던 6.25전쟁을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픔과 슬픔에 부끄러움이 가득했던 역사로 기록된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으로 피해 당사자와 유족들의 가슴과 남아있는 우리의 가슴을 아프도록 저미게 만들고 있습니다.
1980년5월 18~27일 동안 벌어졌던 광주 민주화운동은 정치군인들에 의한 조작된 상황과 그 상황을 아무 생각없이 쫓아간 군인들과 일반 국민들의 합작품이었습니다.
1980년 5월...광주 시민들은 영문도 모른채 폭도로 간주 되어버렸고, 군인들은 정치 군인에 속아 평범한 시민을 적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부끄러운 일은 대다수의 국민들은 알면서도 속고, 알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학살의 당사자인 정치 군인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어처구니 없는 행동도 마다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밝혀진 지금도, 거짓과 세뇌의 골은 깊이 남아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음모론과 조작설이 독버섯 처럼 여론을 헤치고 등장해 남아있는 당사자들의 가슴을 후비고 있습니다.
그래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비극의 역사입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사망자는 총 606명, 이 가운데 165명은 항쟁 당시 숨졌고, 행방불명이 65명, 부상 후 사망 추정자는 376명 등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중 30명은 만 18세 이하였습니다.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하고, 그래서 더욱 잊어서는 안될 80년의 5월의 잔인한 추억이 또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5월의 바람은 시원하지만 마음은 항상 뜨겁습니다.
역사를 통해 배우고, 역사를 통해 기억해야할 우리의 부끄럽고 아픈 기억을 후대에 또다시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 오늘...그 날을 기록하고 되뇌입니다.
영상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8mGDBe8H4pQ
2015년 3월 31일 화요일
운명을 바꾼 말 한마디 - 항우와 유방
영화나 책을 통해 한번쯤 접해봤을 초한지의 주된 내용은 항우와 유방의 대결과 극적인 승패의 갈림길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항우는 초(楚)나라에서 대대로 장군직을 지낸 명문 귀족 출신에다가 키가 8척이 넘고 용모와 풍채가 뛰어나 그 모습만으로 사람들의 경외감을 불러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 유방은 같은 초나라 출신이었지만, 항우와는 달리 이름 없는 농민 출지신이었습니다. 미관 말직으로 재직하다가 죄인들을 풀어주고 그 죄인들을 모아 스스로 유격대장이 됨으로써 반군에 가담하게 되었는데 항우에 비하면 그의 출발은 참으로 초라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처음에 둘은 항량의 진영에서 함께 진의 수도 함양을 공략하는 대출정에 나서기도 했지만 권력이라는 욕망 앞에서 삶과 죽음을 겨루는 적으로 맞닥드리게 됩니다.
그러나 항우와 유방의 대결은 번번히 항우의 승리로 돌아갔고 그럴수록 항우의 자만과 독선은 더욱 심해져 갔습니다.
이 당시 항우가 항상 즐겨 썼던 말은 " 어떠냐?"로 자신의 지략과 용맹에 대한 절대적 충성만을 강요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항우는 독선과 의심이 깊어져 갔고 인재등용에 실패함에 따라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반면 미천한 출신에 지략과 능력이 부족했던 유방은 장량과 소하 같은 유능한 부하들의 말에 귀 기울일줄 알았고 한 때 항우 밑에 있다가 투항한 뛰어난 장군이었던 한신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 후방과 전방을 견고히 구축해 나갔습니다.
유방은 모든 일을 결정하기에 앞서 "어떻하지?"라며 부하들의 의견을 늘 적극 수용하였는데 결국 이런 유방의 겸손한 통치는 많은 인재를 불러 모아 안팎의 힘을 키우고 결국 8년의 지리한 싸움에 최종 승자로 군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항우와 유방의 일하는 2000년 가까운 세월을 넘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이의 말을 경청하고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가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걸 알려주고 있습니다. 찬란한 미래는 결국 작은 것으로 부터 시작된다는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Jmc1Z596lGo
2015년 2월 12일 목요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호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
.
이상화 님의 시를 읽다보면 왠지모를 서러움에 목이 메일 때가 있었습니다.
너무나 억울하고 너무나 가슴이 아파 가슴이 죄어 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들이 겪었던 36년간의 일제 강점기는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말아야 했고, 귀가 있어도 듣지 말아야 했던 울분과 통한의 역사였습니다.
그 당시 일제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계사의 역사 속에서 비루하고 어리석은 나라와 민족으로 매도하고, 조선인들의 마음 속에 체념이라는 무서운 독을 퍼트렸습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독립이라는 허황된 꿈(?)을 꾸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정신과 의지를 파괴시켜 나갔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와 반만년의 찬란한 문화와 긍지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이것이 일제의 가장 큰 역점사업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아무리 길고 매서워도 봄을 소망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 겨울을 반드시 이겨냅니다. 비록 들을 빼앗겨 내것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조선이라는 민족 혼의 등불은 36년의 깊은 흑암 속에서도 꺼지지 않고 살아 남아 비로소 해방이라는 크나큰 빛을 바라보게 됩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우리의 독립은 우리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기에 진정으로 우리의 몫이 아니라구요.. 하지만 아무런 희망도,도움도, 동정도 받을 수 없었던 시간 속에서도 해방된 나라의 작은 씨앗이 되기 위해 총을 잡고 붓을 잡았던 우리의 선조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독립은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선구자의 삶을 살다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되어 쓰러져간 그 분들의 거룩한 희생 앞에 오늘...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출처: ebs지식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OEmJkF9frRc
https://www.youtube.com/watch?v=OEmJkF9fr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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