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26일 금요일

언론에 비춰지는 하나님의교회는 어떤 곳일까요?


특별기회 - 네팔을 감동시킨 하나님의교회 구호봉사

지진 폐허에 노란색 희망을 심다 

월간중앙 특별취재팀


어머니 마음 담은 봉사의 손길, 이재민들의 땀과 눈물 닦아… 교회 앞마당에 상황실 설치해 체계적인 구호활동 지속
5월 26일 네팔 카트만두 딜리바자르(Dilli Bazaar) 지역, 한 달 전 강진으로 집 안에서 매몰됐다 구조된 한 주민의 모습이 보인다. 아직 팔에 깁스를 하고 있지만 그의 표정엔 미소가 가득하다. 뒤쪽에 보이는 그의 집은 마치 산사태라도 난 듯 처참하게 무너져 있다. 그래도 그가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이유는 뭘까?

“나흘 전부터 교회 분들이 와서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저분들의 도움으로 오늘 한 달 만에 제 그릇에 밥을 담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주 기분이 좋아요. 저분들에게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우리를 위해 이렇게 봉사하는 분들을 만나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희 가족들과 이곳 주민들을 대신해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오늘은 제 인생에서 정말 행복한 하루입니다.”
출처: 월간중앙 https://jmagazine.joins.com/monthly/view/306928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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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watv.org/special/special.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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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교회는 이미 여러차례 언론에 소개되었습니다. 그리고 언론사를 통해 조명되는 하나님의교회는 언제나 같은 평가를 받습니다. 

전 세계 175개국에 2500여개의 교회를 세우고 200만이 넘는 성도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님의 진리와 함께 사랑과 마음을 나누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리고 그 한결 같은 마음이 봉사활동으로 전개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칭찬과 명성을 얻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더욱 더 충실히 수행하겠습니다.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하나님의교회와 함께 전 세계적인 봉사활동에 참여해 보시기 바랍니다^^



2015년 6월 25일 목요일

하나님의교회 역사


하나님의 피로 세운 교회

국내에 설립된 교회는 약 6만여 곳이다.
이 많은 교회들 중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는 어디일까.

국내에 설립된 교회 수는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천주교, 성공회 등을 합쳐 약 6만개 정도다. 이는 소종파를 제외한 수치다. 다시 말해, 십자가를 세우고 교회로 운영하는 곳만 6만여 곳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통계연보에 의하면 국내 총 가구수는 대략 1,800만 가구라고 한다. 그렇다면 300가구당 하나는 교회라는 얘기다. 이는 평균적인 수치고 밀집도는 다르다. 100가구도 안 되는 작은 마을에 두세 개의 교회가 존재하는 곳도 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이러한 결과를 예언으로 보이셨다.



네가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뇨 그들이 너의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 (예레미야 2:28)

이렇게 많은 교회 중 우리의 영혼을 의탁해 천국으로 이끌어줄 교회를 발견한다는 건 어찌 보면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만큼 힘든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바라시기에 성경을 통해 당신께서 세우신 교회를 만날 수 있도록 해주셨다. 그렇다. 성경에는 분명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교회가 등장한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20:28)

이 장면은 사도 바울이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위해 에베소에 있는 장로들에게 고별 설교를 하는 모습이다. 성도들의 교육과 믿음의 성장을 걱정했던 바울은 자신이 떠난 뒤에라도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올바로 지켜나가길 강조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내용 가운데 하나의 ‘교회’를 언급했다. 그 교회는 초대 사도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던 기독교인들이 다녔던 교회다. 로마의 압제와 핍박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켜나갔던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하나님께서 피로 사신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하나님의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다’는 뜻은 ‘하나님의 피로 세우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다’(표준새번역)는 뜻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당신의 피로 교회를 세울 수 있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 공동번역 성경을 통해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여러분은 늘 자신을 살피며 성령께서 맡겨 주신 양떼들을 잘 돌보시오. 성령께서는 여러분을 감독으로 세우셔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값을 치르고 얻으신 당신의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습니다. (공동번역 사도행전 20:28)

즉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 대가를 치르고 세우신 교회다. 그러므로 피로 세워진 교회는 당연 하나님의 소유다. 교회가 하나님께서 직접 피의 대가를 지불하고 세워졌다면 이에 대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피’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그 증거를 확신할 수 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8)

예수님께서 ‘나의 피’라고 말씀하신 ‘이것’은 바로 유월절의 포도주다. 유월절 성만찬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떡이 당신의 몸이며, 포도주가 당신의 피임을 알려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피’로 세우신 교회는 ‘유월절’이라는 진리가 있어야 한다. 유월절 진리가 없다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아니다. 이는 오늘날 세워진 6만 개의 교회가 하나님의 소유가 아니라는 결론이다. ‘하나님의 피’를 의미하는 유월절을 지키고 있지 않으니 당연히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될 수 없지 않겠는가. 곧, 아무리 하나님을 부르짖어도 그곳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

그렇다면 세상의 수많은 교회 중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피로 세워주신 교회는 어디일까. 우리의 영혼을 의탁하고 천국으로 인도해줄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 그 교회의 이름은 바로 ‘하나님의 교회’라고 성경에서는 알려주고 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고린도전서 1:2)

그리스 남단에 위치한 고린도라는 지역에 ‘하나님의교회’가 있었다. 그 하나님의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사도 바울은 ‘성도’라고 불렀다. 여기에서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교회’지만 에베소에 있는 하나님의교회도 있었고, 갈라디아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빌립보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로마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골로새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등이 있었다. 이처럼 초대교회 즉, 초대 하나님의교회 당시에는 소아시아 지방 각 도시마다 ‘하나님의교회’가 존재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운명하신 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유럽과 아시아로 전파됐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바울 또한 유대교에서 하나님의교회로 개종한 사례도 있었다.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갈라디아서 1:13)

하나님께서 당신의 피를 대가로 세우신 교회는 그 이름이 ‘하나님의교회’다. 당연 하나님의교회는 ‘유월절’ 진리를 지킨다. 하나님께서 세우셨기 때문이다. 6만 개가 넘는 교회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하나님의교회’다. 그러므로 하나님의교회에는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

초대 하나님의교회 당시 사도들을 핍박했던 유대교 사람들에게 교법사 가말리엘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사도행전 5:38~39)

하나님의교회의 정통성은 그 모든 사상과 소행이 하나님께로 나왔기에 절대 변질될 수도, 흐려질 수도 없다. 온 지구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피로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이다.

- 출처: 패스티브닷컴




2015년 6월 23일 화요일

하나님의교회에서 하늘 아버지와 하늘 어머니께서 주시는 구원의 초대장을 받으세요

어떤 초대

한 나라의 왕 혹은 대통령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퍽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리라.
그런데 당신은 곧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초대를 받게 될 것이다.


1937년 10월 28일자 동아일보 2면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기사의 제목은 ‘신부 실종’이다. 기사는 혼인을 일주일 앞둔 신부 김영자의 행방을 찾는 내용이다. 결혼식을 코앞에 두고 신부가 없어지다니, 신랑과 가족들이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성경에도 이 사건과 흡사한 내용이 있다.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잔치에 손이 가득한지라 ···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 (마태복음 22:1~14)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속에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신부가 보이지 않는다. 신랑과 하객은 있는데 혼인잔치의 주인공이자 꽃이라 할 수 있는 신부는 어디로 갔을까. 혹자는 “성경의 신부는 성도들”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한다. 성경을 자세히 읽으면 그 주장이 오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유 속 신랑은 예수님 자신이며 청한 사람들은 성도를 가리킨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마태복음 9:15, 마가복음 2:20, 누가복음 5:35)

이 말씀에서는 청한 사람들, 즉 성도를 혼인집의 손님들이라 비유하셨다. 하객을 불러놓고 신부 대신 결혼을 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성도는 결코 신부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신부는 누구일까. 신부가 언급되지 않았던 공관복음서의 기록과는 달리 천국 혼인잔치가 성대히 열리는 장면을 기록하며 아내, 즉 신부를 언급해놓은 책이 있다. 요한계시록이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요한계시록 19:7~9)

사도 요한은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열리는 모습과 그의 신부, 청함을 받은 손님들을 계시로 보았다. 청함을 입은 복 받은 자들은 당연히 성도들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등장하는 어린양의 아내는 누구인가.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요한계시록 21:9~10)

신부의 모습을 보고 싶은 사도 요한의 요청에 천사가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었다. 이 하늘 예루살렘에 대해 언급한 사도 바울의 증거를 보자.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신부를 일컬어 요한은 어린양의 아내라 했으며 하늘 예루살렘이라고 말했다. 그 예루살렘에 대해 사도 바울은 우리의 어머니라고 설명했다. 우리 아버지의 아내는 당연히 우리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성도인 우리는 과연 하늘 어머니의 존재를 어떻게 믿을 수 있으며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아버지 하나님만 믿어온 기성교인이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수 있는 잣대를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이사야 62:6~7)

예루살렘이 단순히 성벽이라면 하나님께서 무슨 이유로 찬송을 받게 하시겠는가. 세상에서 찬송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즉, 이 말씀에 나타난 예루살렘은 사도 바울이 증거한 우리의 어머니 즉, 하늘 어머니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누가 예루살렘을 세운다고 하셨는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영적 예루살렘이신 하늘 어머니는 아무나 세울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우리가 섬기고 알아야 하는 하늘 어머니는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이 세워줄 수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도 알려주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창세기 2:22~23)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로 만든 하와를 아담에게 데려오자 아담은 하와를 보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말하며 ‘여자’라 칭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성경에 아담과 하와는 단지 아담과 하와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로마서 5:14)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20)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성경 맨 마지막에 ‘오실 자’에 대해 언급했다. 바로 예수님이다. 즉 아담은 오실 자를 표상하고 있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아담이 예수님을 나타낸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아담이 하와를 일컬어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칭했다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어머니 하나님을 증거해 주실 것을 예언적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창세기 3:20)

또한 아담의 아내에게 ‘하와’라는 이름을 준 것도 아담이다. 하와라는 이름의 뜻은 ‘생명’이다. 이 말씀은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하늘 어머니를 알려주실 것에 대한 예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 알려주시고 세워주신 분이 바로 우리의 영혼을 낳으시고 구원하실 하늘 어머니다. 하늘 아버지와 하늘 어머니께서 이 시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성령과 신부,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 나아온 자들이 천국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복 받은 자들이다.

-출처: 패스티브닷컴



2015년 6월 21일 일요일

△, ○ 속에 담긴 단어 ‘양심’


 
그림문자를 사용했던 인디언은 ,를 두 가지로 표현했습니다. 바로 양심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마음속에 삼각형 양심을 타고 난다고 믿었던 인디언들...
나쁜 생각과 행동, 거짓말을 할 때마다 마음속에서 삼각형양심이 빙글 빙글 돌면서 가슴이 아프고 마음의 통증이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점차 나이가 들수록 수없이 많은 잘못을 저지르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삼각형 양심도 너무나 많이 돌고 돌아 그만 이 돼 버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어느 순간 아무리 부끄러운 일을 해도 마음이 아파지지 않게 된다는군요....
 
인디언의 이 이야기는 스스로 비양심과 잘못에 이유를 만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오늘의 우리를 정확하게 표현해 주는 것 같아 얼굴을 달구게 합니다.
 
그래도 이 세상이 아직 살만한 건 양심을 가진 사람보다 아직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일 겁니다.
 
충북 공주의 전교 60명인 한 초등학교는 시골 오지로 그 흔한 문방구 하나 없지만 교내에 만들어진 양심 가게에서 양심을 팔고 인성을 거슬러 주고 있습니다. 누구하나 의심하지 않고 누구도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가운데 아름다운 인생을 채워가는 학생들의 반듯한 삼각형 양심이 닳고 닳아 동그래진 수많은 사람들의 양심을 다시 삼각형으로 되돌려 주길 희망합니다.
 
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kAMziVgYRiU

2015년 6월 19일 금요일

상어를 통해 배우는 믿음의 길 2

상어는 늘 사나운 입을 벌리고 다닙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짓이지만 그로말미암아 
다른 이의 간담을 늘 서늘하게 만듭니다.

우리도 이런 상어의 모습을 닮아 사람들을 두려워해서 
입술을 다물고 뒤로 물러서는 믿음이 아니라 

내 영혼이 살기 위해 늘 담대히 복음을 외치고 전해서 
악한 자들 손에서 많은 영혼을 구하고 

악한 자들로 하여금 우리와 함께하시는 
엘로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아버지,어머니 앞에 
무릎 꿇게 만들어야 합니다.

상어는 언제가는 죽습니다.
그리고 자기보다 더 강한 자 앞에서 사라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버지,어머니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약속 받았습니다. 
그래서 쉼 없는 믿음의 길 끝에는 사망이 아닌
영원한 천국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의 이 길이 힘들고 어렵다 하더라도 
쉼 없는 우리의 노력이  결국 믿음의 목적을 
이룰 수 있게 해준다는걸 잊지마세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41:10)



2015년 6월 17일 수요일

상어를 통해 배우는 믿음의 길


 

물속에 사는 어류들은 가스양을 조절하는 공기주머니, 부레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물과 몸속의 비중을 일치시키는, 완벽한 자동시스템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레는 어류가 상하로 이동할 때에도 쓰이며 어류의 청각, 평형감각 등도 담당합니다. 어류들이 굳이 지느러미를 움직이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수심에 머무를 수 있는 이유도 부레 덕분입니다.


그런데 상어는 어류면서도 부레가 없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부레를 가지지 못한 상어는 과연 어떻게 가라앉지 않을까요. 또한 어류로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상어가 어떻게 바다동물의 가장 강력한 포식자의 지위를 가질 수 있었을까요.


상어는 쉴 새 없이 지느러미를 움직입니다. 

이유는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부레 없이 태어난 상어는 잠시도 쉬지 않고 평생 헤엄을 쳐야 하는데, 몸의 구조도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부레로 헤엄치는 경골어류와 달리 상어의 뼈는 물렁뼈(연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게다가 내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간은 지방간으로 상어에게 약간의 부력을 줍니다. 해서 상어는 쉬지 않고 헤엄치며 죽을 때까지 깊은 휴식을 취할 수 없습니다.


상어를 포식자로 보이게 하는 주된 원인은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다니기 때문입니다. 상어가 입을 벌린 채 헤엄을 치는 이유는 아가미에 운동기능이 없어서입니다.



대부분 어류가 아가미를 통해 물속의 산소를 빨아들입니다. 하지만 아가미에 운동기능이 없는 상어는 입을 벌린 채 계속 움직여야 물이 아가미로 들어갑니다. 이 같은 상어의 모습에 피식자들은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수중생태계의 대명사로 불리는 상어를 보며 우리도 신앙생활에 있어 쉴 새 없는 믿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살기 위해 몸짓을 멈출 수 없는 상어처럼 우리도 천국으로 향하는 몸짓을 멈추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으면 관두는 내 마음대로의 신앙은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믿음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쉼 없는 그 길 끝에는 영원한 천국이 기다리고 있기에 비록 지금의 이 길이 힘들고 어렵다 하더라도 쉼 없는 우리의 몸짓이 결국은 믿음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 참고자료 >
 1. ‘상어’, 네이버캐스트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4&contents_id=43337


 2. ‘부레’,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03720&cid=40942&categoryId=32319


출처: 패스티브닷컴

세상을 바꾸는 힘.. 정정당당 [ 正正堂堂 ]


1988서울올림픽 부산 해운대에서 벌어진 요트결승전에서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할 줄 알았던 진정한 챔피언이 있었습니다.
 
갑작스런 기상악화로 모두가 경기에 어려움을 겪을 때 우승후보 중 하나였던 캐나다 대표 로렌스 르뮤는 거친 파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싱가포르 국가대표팀 선수의 구조요청을 외면하지 않고 얼마 안남은 결승점을 포기한 채 2위로 달리던 그의 요트를 돌려 바다에 빠진 선수를 도와주는 진정한 올림픽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날의 순위는 22, 메달의 꿈은 사라졌지만 그에게는 더 값진 메달이 주어졌습니다
바로 쿠베르탱 메달입니다. 훌륭한 성적을 받은 선수도 받을 수 없는 진정한 올림픽 메달로, 올림픽 창시자 피에로 쿠베르탱을 기념하여 진정한 올림픽 정신 즉, 공정한 게임을 펼친 선수에게만 수여하는 영예로운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2003트루 드 프랑스세계 사이클 대회 15구간에서 세계 챔피언 랜스 암스트롱과 만년 2인자 얀 울리히의 세기의 대결이 펼쳐지게 됩니다.
 
그런데 15초의 사이를 두고 박빙의 승부를 벌이던 두 사람에게 얘기치 않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결승점을9.5km 남겨 둔 상황에서 암스트롱의 자전거가 관중의 가방끈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그 순간 그 뒤를 바짝 따라붙던 울리히는 그 상황을 못본척 하고 그대로 달리면 만년 2인자의 설움을 날려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울리히는 암스트롱이 다시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출발할 때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나란히 최선을 다해 결승점을 향해 달렸습니다. 결과는 암스트롱 1, 울리히 2위였습니다. 울리히 경기 후 난 행운이 아닌 진정한 승리를 원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오늘 날까지 2003년 의 트루드 프랑스는 1등 암스트롱, 2등 얀 율리히의 위대한 멈춤, 거룩한 양보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정정당당이 필요한 곳은 스포츠 경기 뿐 아니라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정정당당한 행동으로 역사를 바꾼 마하트마 간디와 마틴 루터 킹이 그 주인공입니다.

마히트마 간디는 1947년 비폭력, 무저항으로 세계인의 마음을 감동시켜 인도를 영국으로부터 독립시켰고, 워싱턴에 모인 수많은 흑인들 앞에서 사랑과 관용과 평화를 호소했던 마틴 루터 킹은 자신과 흑인을 적으로 몰았던 백인들의 마음까지 움직여 흑인차별을 정당화했던 짐크로법을 폐지시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상관없다는 유혹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이 결국 애써 이뤄놓은 결과와 인생의 의미마저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진정한 승리를 원하나요? 진정으로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가요?
그럼 언제 어디서나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걸으세요.. 
그리고 항상 정정당당의 힘을 믿으세요.


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5L6IL5_8i00

2015년 6월 12일 금요일

보배로운 하나님의 축복의 날 '새언약 안식일'

아무리 귀하고 아름다운 보석이라도 원석(原石)이었을 때는 돌덩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만일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갖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며, 혹 갖게 되더라도 아무 데나 방치해 두었다가 누군가 달라고 하면 선뜻 내주기 쉽다. 무엇이든 가치를 알지 못하면 경홀히 여길 수밖에 없고, 결국 잃어버리게 되어 있다. 오직 가치를 아는 자만이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키라 하신 일곱째 날 안식일도 이와 같다. 안식일은 단지 ‘예배를 드리는 날’이 아니라 우리 영혼에 있어 보배로운 날이다.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과 숭고한 은혜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보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안식일의 참된 가치를 깨달아야만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다.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 (이사야 56:2)

그렇다면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어떤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일까. 이는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 안식하신 일과 ‘안식(安息)’이라는 단어를 통해 깨달을 수 있다. 말 그대로,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은 안식을 누리는 축복을 받게 된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 쉬시며 그날을 복을 주고 거룩하게 하셨다. 이 말은 일곱째 날 자체가 복을 받고 거룩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날을 지키는 백성들이 복을 받는다는 의미다.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 (에스겔 20:12)

또한 하나님의 창조사업에 대해 기술할 때,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반복적으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몇째 날이니라” 하는 표현이 있다. 그런데 일곱째 날에는 더 이상 이 표현을 쓰지 않았다. 그 이유는 6일 창조에 대한 예언이 6천년 구속사업에 대한 예언으로, 7일째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것처럼 7천 년째부터는 더 이상 시간의 끝이 없는, 영원한 안식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안식일에 대한 예언은 아직 다 성취되지 않았다.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베드로후서 3:8)”는 말씀과 같이 6일 창조의 역사는 6천 년간 이루시는 영적 창조, 즉 구원의 역사를 예표한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것은 7천 년째 당하는 안식 천년의 예언으로써, 구원받은 자녀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왕 노릇하며 완전하게 성취될 것이다(요한계시록 20:4~6, 22:5).

사람은 누구나 힘들고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 편안히 쉬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 바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뿐더러 이 땅에서는 아무리 편히 쉰다고 해도 실상 쉬는 것이 아니다. 좋은 것, 편안한 것도 잠시간일 뿐 그조차도 여전히 힘이 들기 때문이다(전도서 1:8, 2:22).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안식은 다르다. 사망도, 눈물도, 애통함도, 고통도, 아픔도 없는 천국에서 영원히 누리게 되는 그야말로 ‘완전한 안식’이기 때문이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 21:4)

이처럼 안식일은 엄청난 축복이 약속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녀들에게만 이 모든 은혜를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약속은 아직도 효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무도 그곳에 들어갈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우리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기쁜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은 말씀이 자기들에게 유익이 되지 못했던 것은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면 그 안식처에 들어갈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먼저 기쁜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불순종했기 때문에 그곳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사람은 하나님이 일을 마치고 쉬신 것처럼 자기 일을 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순종하다가 멸망한 사람들처럼 되지 말고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히브리서 4:1~11, 현대인의성경)

구약시대 하나님께 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신약시대 하나님께 순종하는 백성들에게는 천국으로 인도하셔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도록 축복해주신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이 안식일을 세상 끝 날까지 지키라고 당부하셨던 것이다(마태복음 24:20).

하나님의 뜻이 모두 이루어질 때, 안식일의 가치를 깨달아 굳이 잡고 있었던 인생들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안식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매주 일곱째 날마다 이 보배를 우리에게 값없이 나누어주고 계신다.

- 출처: 패스티브닷컴


2015년 6월 11일 목요일

토마토와 대통령

과거 유럽에서는 토마토를 먹지 않고 관상용으로만 즐겼습니다.

겉모습이 독초인 멘드레이크와 닮았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외양이 사람과 유사한 멘드레이크는 별명이 '사탄의 사과'라 불리웠는데
실제로 멘드레이크는 아트로핀, 스코폴라민 등 환간 성분이 들어 있어 섭취하며 마취,환각에 빠질 수 있다고 합니다.

유럽인들은 그래서 19세기 들어 와서야 토마토를 먹기 시작했고,
그것도 몇 시간의 조리를 거쳐 해독이 됐다고 생각한 토마토만 섭취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토마토가 오늘 날 익히지 않은채 자유롭게 먹게 된 중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백악관 만찬장에서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이 자신의 정원에서 키운
싱싱한 토마토를 만찬장 테이블에 올린 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주 맛있게(?) 먹고
토마토에 대한 낭설과 편견을 불식 시킨 후 부터였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그것이 반드시 진실일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다분히 주관적이고 집단적 사고에 머물러 있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편견이 거짓으로 드러나기 까지 너무 많은 시간과 헛된 수고가 동반되게 됩니다.

사람들의 생각에 진실을 부여하지 말고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진실을 정확히 바라보고자
했던 토마스 제퍼슨과 같은 용기와 노력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거 같습니다.

내용인용: http://blog.daum.net/nhicblog/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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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8nm65SDnLbs

2015년 6월 9일 화요일

'하나님의교회' 제20주년 바다의 날을 맞아 단체상으로는 최고의 영예인 대통령표창을 받았습니다.

다년간 해양환경보호·재난구호활동 공로 치하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사고 방제활동

여수 기름유출사고 피해지역 무료급식 자원봉사
경남 고성, 전남 완도·진도 등지 태풍 피해 복구
세월호 침몰 참사 피해 가족 위해 44일간 무료급식 자원봉사
평시와 휴가철에 전국 각지 바다에서 환경보호활동과 캠페인 전개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총회장 김주철 목사·이하 하나님의 교회)가 제20주년 바다의 날을 맞아 단체상으로는 최고의 영예인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20회 바다의 날 유공자 포상 전수식'에서 김영석 해양수산부 차관이 하나님의 교회에 표창장과 함께 단체표창수치를 전달했다. 김영석 차관은 “하나님의 교회가 대한민국을 대표해 아픔의 현장에서 우리에게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주셨다. 여러분이 헌신적인 열정으로 전 국민에게 보여주신 메시지에 대해 대통령표창을 드린 것은 적절한 일이며 그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하나님의 교회 자원봉사자들의 세월호 참사 무료급식 자원봉사 현장에 직접 방문했던 김 차관은 “긴 기간 동안 불평 한 마디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해준 음식은 물론, 여러분이 보여주신 미소와 마음이 참으로 큰 위로가 됐을 것”이라며 “그러한 정신으로 대한민국을 잘 이끌어주시길 바라며 여러분의 헌신과 사랑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전했다.

이번 수상에 대해 하나님의 교회 총회장 김주철 목사는 “그동안 전국 각지의 성도들이 바쁜 일과 속에서도 이웃과 사회를 돕기 위해 한마음으로 동참해왔다. 그 중심에는 주는 사랑과 섬김의 본을 보여주신 하나님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도 가족을 사랑하고 보살피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힘닿는 데까지 도움의 손길을 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포상 중 개인에게 가장 명예로운 상이 훈장이라면 단체상으로는 대통령단체표창이라고 볼 수 있다. 대통령단체표창은 5년 이상 해당 분야에서 공적을 쌓은 단체에 수여되는데, 종교단체가 받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해양수산부는 하나님의 교회가 다년간 태풍 및 해양 기름유출 피해지역 복구, 해수욕장 일대 정화 등으로 해양환경 보전 및 안전사고 방지에 기여해왔다고 공적을 밝혔다.

하나님의 교회는 대규모 국가 재난이었던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사고 방제활동을 비롯해 여수 기름유출사고 피해지역 무료급식 자원봉사, 경남 고성과 전남 완도·진도 등지의 태풍 피해 복구 등 각종 재난지역에서 복구 및 구호활동에 앞장섰다. 최근에는 전 국민을 비통에 빠뜨렸던 세월호 여객선 침몰사고 피해가족들을 위해 전남지역 성도들을 중심으로 연인원 700여 명이 44일간 무료급식 자원봉사를 전개해 그들의 아픔을 위로한 바 있다.

또한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등으로 병들어가는 항만과 바다 정화에도 솔선하고 있다. 평상시는 물론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휴가철에도 구슬땀을 흘리며 환경보호활동과 캠페인을 전개했다. 안산 대부도 방아머리해수욕장, 부산 해운대·광안리·송도해수욕장, 포항 신항만·칠포해수욕장, 보령 대천항, 인천 강화도 동막해수욕장, 강릉 경포대해수욕장, 군산 새만금방조제, 태안 만리포해수욕장, 제주 연대포구 등 전국 각지 정화활동에 연인원 1만 5000명이 참여했다.

이번 표창은 최근 정부포상 방침이 강화된 가운데 포상 대상자 선정부터 공적 심사와 포상 규모 결정까지 세밀한 조사와 확인을 거쳐 수여된 것으로 가치가 더욱 크다. 해양수산부 홈페이지를 통한 국민 공개검증, 경찰청과 공정거래위원회, 노동부의 각 분야별 검증, 공적심사위원회의 심사와 행정자치부 추천, 국무회의 상정, 최종적으로 대통령의 재가로 수상이 결정됐다.

앞서 행정자치부는 이 같은 상훈제도 개선과 관련해 “현장에서 땀 흘리며 실질적으로 기여한 실무자를 우선 선발하여 공적이 있으면 지위에 상관없이 정부포상을 받게 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수상자들의 공적을 모범으로 삼아 국가 발전에 자발적으로 기여하는 문화가 확산될 것으로 기대했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이를 통해 공적이 있는 사람이 상을 받는 정부포상의 원칙이 확실히 정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출처:http://www.newshankuk.com/news/content.asp?fs=1&ss=3&news_idx=201506081552181495

2015년 6월 5일 금요일

동생의 눈물


 
어느 날 희귀한 혈액형을 가진 아이가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급히 수혈을 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였습니다. 아이의 혈액은 희귀한 것이었지만, 다행히 몇 살 터울의 동생 혈액이 일치했습니다. 아이의 엄마가 아이에게 이 상황을 자상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형은 지금 피가 있어야 살 수 있단다. 네가 형을 위해서 피를 줄 수 있겠니?”
 
그럼요. 할 수 있어요.”
 
동생은 형 옆에 나란히 누워 수혈을 했습니다. 마침내 형은 동생 덕분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엄마는 기쁜 목소리로 누워있는 큰아이에게 말했습니다.
 
고맙다. 이제 형은 무사하단다. 네 덕분에 살게 됐어.”
 
그래요? 그러면 엄마, 저는 이제 언제 죽게 되나요?”
 
깜짝 놀란 엄마가 아이에게 되물었다.
 
죽다니?”
 
피를 뽑으면 죽지 않나요?”
 
헌혈을 처음 해본 동생은 몸에서 피를 뽑으면 죽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아이의 반문에 엄마는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러면 너는 죽는 줄 알면서도 형에게 피를 주었니?”
 
. 저는 형을 사랑하니까요.”


영상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K51ydrLEf5M&index=1&list=PLt7CKW6zjlVCzmw7RXbURaOS6VwNy1dcg

2015년 6월 2일 화요일

기도를 파는 아버지


 출근 시간의 소란이 지나가고 조금 한산해진 지하철 일이라고 합니다.
그곳은 서브웨이 보부상이라 불리는 장사꾼들의 영업무대가 되곤 합니다.
  
강력접착제와 다용도 칼을 파는 이가 한바탕 열변을 토하고 간 뒤 한 남자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초췌한 몰골의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용기를 낸 듯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제겐 네 살난 딸이 하나 있습니다. 아주 착하고 예쁜 아이입니다."
 
그런데 그 애가 그 착하고 예쁜 딸이 그만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까지 말하였을 때 승객들은 그가 물건을 팔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언짢아진 승객들은 그를 외면 했고 바로 그때 그가 등에 메고 있던 가방에서 책 한권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책을 파는 대신 그 책을 펴 보이며 말했습니다. 그 페이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기도가 소망을 이루어 준다'
 
"많은 사람이 함께 기도를 해 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여러분 부디 제 딸이 살아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제 딸의 이름은 송희 입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는 꾸벅 절을 한뒤 다른 칸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다음 순간 승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이제 겨우 네살! 죽음을 알기엔 너무 어린 아이 송희를 위해
기도를 파는 그 아버지를 위해....
 
 
 
아빠의 마음은 어떠한 마음 이였을까요?
 
아마 딸을 살리기 위해 무엇이든 다할 수 있는 불 붙는 심령이였을것입니다. 낮설은 장소에 낮설은 사람에게 담대히 딸의 기도를 부탁하는 아빠의 모습...
  
바로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아버지,어머니의 사랑이 너무나 가슴 깊이 새겨지는 아름다운 이야기인거 같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영상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XX4DggJ5zXk